넷플릭스는 막대한 수익을 벌어들이면서도 세금을 제대로 내지 않아 질타를 받는 기업 중 한 곳이다. 그런 넷플릭스가 영국, 스페인 등 유럽에서 입장을 바꿨다. 2021년부터 각 국가 과세당국에 법인세를 납부하겠다고 밝힌 것이다.

넷플릭스는 한국에서도 적잖은 수익을 올리고 있는 만큼 유럽에서의 태도 변화가 한국 관련 정책에 영향을 줄 지에 관심이 쏠린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앵무새처럼 국내법을 준수한다는 형식적인 답변만 늘어놓았다.

넷플릭스 로고 / IT조선
넷플릭스 로고 / IT조선
25일 미디어 업계와 외신 등에 따르면, 넷플릭스는 새해부터 영국과 스페인에 막대한 규모의 세금을 낸다. 넷플릭스는 그동안 영국 가입자의 구독료를 네덜란드 지사에서 청구했다. 네덜란드 지사가 수익을 내며 세금을 회피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영국의 민간 조세정책 싱크탱크인 택스와치가 발표한 보고서를 보면, 넷플릭스는 2018년 영국에서 8억6000만파운드(1조2800억억원)의 수익을 거뒀다. 하지만, 넷플릭스서비시스UK(넷플릭스 영국 지사)는 4800만파운드(717억원) 매출(수익)과 230만파운드(34억원) 영업이익(이익)을 거뒀다고 과세당국에 보고 했다. 세금감면제도 혜택을 받으며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았다.

넷플릭스가 영국에서 거둔 수익은 2019년 10억8000만파운드(1조6000억원)로 증가했다. 하지만 이 역시 모두 네덜란드 지사로 흘러들어갔다. 6850만파운드(1000억원)의 이익이 발생한 만큼 1300만파운드(194억원)의 세금을 내야하지만 그러지 않았다는 지적을 받았다.

넷플릭스 영국 지사는 영국 기업등록관청인 컴퍼니스하우스에 제출한 자료에서 영국에서 253만파운드(37억원)의 수익을 올렸다고만 밝혔다.

넷플릭스 본사와 영국법인 연결 구조 / 택스와치 사이트 갈무리
넷플릭스 본사와 영국법인 연결 구조 / 택스와치 사이트 갈무리
넷플릭스는 텍스와치 보고서에 오류가 있다고 반박했지만, 세금 회피 비난 여론과 의회의 압박이 이어졌다. 넷플릭스는 11월 말 영국에서 낸 수익은 영국 과세당국인 HMRC에 신고하고 법인세를 납부하겠다고 발표했다. 결국 백기를 든 셈이다.

넷플릭스의 2020년 영국 매출은 11억4000만파운드(1조7000억원)로 관측된다. 영국은 수익이 아닌 이익에 따라 법인세를 결정한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분야에 투자한 액수가 많은 만큼 실제 이익은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네덜란드 지사에 법인세를 내던 시절보다는 많은 세금을 납부하게 될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다. 넷플릭스는 영국뿐 아니라 스페인에서도 새해부터 같은 방식으로 법인세를 납부한다.

한국에서도 법인세 회피 의혹

유럽 일부 국가에서 조세회피 문제로 질타를 받은 넷플릭스는 한국에서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다. 넷플릭스는 8월 법인세 납부 회피 의혹으로 국세청 조사를 받았다. 국세청은 넷플릭스 한국법인이 미국 본사에 경영 자문료를 지급하고 적자를 내는 방식으로 법인세를 회피했는지 들여다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넷플릭스 월 결제금액 추이 / 와이즈앱
넷플릭스 월 결제금액 추이 / 와이즈앱
넷플릭스의 가입자와 월 결제금액은 상승 중이다. 와이즈앱에 따르면 2019년 10월 362만명이 514억원을 결제한 것으로 추정된다.

2020년 국정감사에서는 넷플릭스를 비롯한 다국적 IT기업들이 낸 세금이 극히 적다는 지적을 받았다. 박홍근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국세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넷플릭스를 비롯해 구글·페이스북·아마존 등 글로벌 IT기업 134개사가 한 해 동안 납부한 부가세는 2367억원에 불과하다. 국내 1위 포털 기업인 네이버가 내는 법인세(4500억원)에 한참 못 미치는 금액이다.

넷플릭스는 한국에 법인이 있다. 국내에서 내는 수익은 넷플릭스서비시스코리아로 간다. 다만 구글처럼 국내 매출이 구글코리아가 아닌 구글 아시아퍼시픽 등 법인세가 저렴한 국가의 사무소로 흘러들어가는 지 여부는 확인이 어렵다.

넷플릭스 측은 국정감사 장에서 조세회피 지적을 받자 국내법과 국제 조약에 따라 성실하게 법인세와 부가가치세를 모두 납부하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국내에서 거둔 수익이 영국에서처럼 해외 지사에 잡히는 부분이 있냐는 질문에 넷플릭스는 "국내 매출 등은 아직 공개하고 있지 않은 점 양해 부탁드린다"고 하는 등 동문서답식 답변을 했다.

韓도 디지털세 추진

유럽은 미국에 본사를 둔 다국적 기업의 법인세 납부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자 대안으로 디지털세 징수 카드를 내밀었다. 디지털세는 넷플릭스,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처럼 물리적인 고정사업장 없이 국경을 초월해 사업을 행하는 기업에 물리는 세금을 뜻한다. 우리나라에도 디지털세 징수 도입을 논의 중이다.

프랑스 등 서유럽권은 2019년 7월부터 2∼3%수준의 디지털세 제도를 도입하거나 제도 도입을 검토 중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9월 넷플릭스, 트위터, 줌 등 12개 디지털 기업에 10%의 부가가치세를 내라고 통보했다. 디지털세 징수가 전세계적으로 보편화하는 추세다.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연주환 넷플릭스 팀장 / 국회의사중계
10월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 증인으로 출석한 연주환 넷플릭스 팀장 / 국회의사중계
한국 정부는 2019년 12월부터 디지털세 대응팀을 만들어 관련 내용을 검토 중이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2021년 중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주요 20개국(G20)은 디지털세 최종 방안을 합의하기로 했다. 우리나라도 2021년에 디지털세를 도입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실효성 논란은 있다.

권오상 미디어미래연구소 센터장은 "구글처럼 법인세가 저렴한 아일랜드, 네덜란드, 싱가포르 등을 통해 세금을 회피하는 기업들이 많다보니 유럽에서 활발하게 디지털세 도입 논의가 이뤄졌다"며 "넷플릭스도 그렇고 해외 기업들이 유한회사로 법인을 내다보니 회계 의무가 덜 까다롭고, 실제로 매출을 올리는 회사의 파악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어 "디지털세를 도입하더라도 국내 기업만 성실히 내고 해외기업은 이를 회피하는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며 "기금 형태로 세금을 거두는 논의도 진행 중이지만, 이 역시도 해외 기업이 따를 지에 대한 역차별 논란이 있다"고 말했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