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세 이상의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진행하는 정부의 이동통신 요금 감면 제도가 한계가 크다. 정부가 노년층을 위한 통신 복지로 해당 제도를 내세우지만 요금 감면에 따른 부담은 이통사에 떠넘겼다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통신사가 정부에 내년 공적 기금인 방발기금이나 정진기금을 취약층 통신비 지원에 활용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과기정통부 / IT조선 DB
과기정통부 / IT조선 DB
5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과기정통부) 및 이동통신 업계 등에 따르면, 정부가 기초연금 수급자(65세 이상 노인 중 소득 하위 70%)를 대상으로 이동통신 요금 감면 제도를 운영하지만 재원 마련 등에 문제가 있다.

해당 요금 감면 제도는 정부가 2018년 7월부터 시행한 사업이다. 기초연금 수급자가 이동통신 요금 할인을 신청하면 월 1만1000원 한도로 요금을 할인받을 수 있다. 단, 요금제가 월 2만2000원 미만일 때는 50% 감면이 적용된다.

할인 혜택이 적지 않고, 지원을 받으려는 대상자는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감면액도 오른다. 과기정통부를 통해 확인한 결과 2020년 10월 기준 269만명이 지원을 받아 총 2200억원의 감면액이 발생했다. 2019년 207만명이 1934억원을 지원받은 것과 비교하면 한 해 동안 300억원 가까이 감면액이 늘었다.

과기정통부 관계자는 "사업 시작 후 예상보다 빠르게 요금 할인을 받은 인원이 늘었다"며 "감면자는 꾸준히 늘고 있는 상태다"라고 말했다.

정부가 자랑하고 이통 3사가 부담 진다

문제는 지급 대상자와 감면액이 해마다 늘어남에도 불구하고 모든 책임은 민간이 지고 있다는 데 있다. 주무부처인 과기정통부는 소득이 낮은 고령층의 통신 접근성을 보장한다며 요금 할인을 홍보하지만 자체 예산을 투입하는 것은 아니다. SK텔레콤과 KT, LG유플러스 등 이동통신사가 감면액을 모두 떠안는 구조다.

최근 65세 이상의 노인 인구가 큰 폭으로 늘어나는 만큼 이통 3사의 감면액 부담은 점차 늘어날 예정이다. 국회예산정책처 추계에 따르면 기초연금 수급자는 올해 584만명이다. 10년 후인 2031년에는 918명으로 그 수가 대폭 증가한다. 이 경우 이통 3사 부담액은 10년 전보다 최소 3배 이상 증가할 수 있다.

2018년 7월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이동통신 요금이 감면된다는 소식을 알리는 방송 화면 / KTV국민방송 갈무리
2018년 7월 기초연금 수급자를 대상으로 이동통신 요금이 감면된다는 소식을 알리는 방송 화면 / KTV국민방송 갈무리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최근 기초연급 수급자를 포함해 취약계층이 이동통신 요금 할인을 신청하지 않아도 자동 감면해주는 방안을 추진한다. 일부 지자체를 시작으로 통신비 100% 자동 감면 시범 사업을 진행해 관련 시스템을 개발하고 법 개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민간 부담은 지속해서 문제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일례로 서울교통공사 등 전국 6개 지하철 운영기관은 수년간 정부에 무임승차 비용 보전을 요구하며 갈등을 빚고 있다. 6개 기관이 65세 이상 노인과 장애인 등에 지하철 요금을 면제해주면서 2015~2019년 9068억원에 달하는 손실액을 입었다. 정부는 한국철도(코레일)에만 무임승차 손실금을 보전해주고 있다.

매해 감면액 늘어나지만 정부는 ‘모르쇠’
이통 업계 "공적 기금에서 통신 복지 지원해야"

이통 업계는 정부의 사업 취지에 동의한다는 의견을 표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 차원에서 기초연금 수급자에게 이동통신 요금 혜택을 제공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다만 계속해서 늘어나는 감면액은 부담될 수밖에 없다.

이통 업계는 제도 시행 전 이같은 우려를 표한 바 있다. 과기정통부는 2017년 11월 가계통신비 인하 방안을 논하고자 정부 관계자와 이통 업계 관계자 등을 포함해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를 출범시켰다. 여기서 고령층의 이동통신 요금 부담을 낮춰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다.

이통 업계는 협의 과정에서 논의 취지에 공감하지만 감면 시행 시 부담이 계속 증가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정부는 고령층 중 기초연금 수급자에 한해 요금을 지원하도록 해 제도를 시행한다고 했지만, 기초연금 수급자의 수가 늘어나며 이통 업계의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

2018년 2월 발표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결과보고서에 기재된 기초연급 수급자 요금 관련 논의 / 과기정통부
2018년 2월 발표된 가계통신비 정책협의회 결과보고서에 기재된 기초연급 수급자 요금 관련 논의 / 과기정통부
일각에서는 이통 3사가 각자 매출에서 부담을 껴안기보다 이통 업계가 정부에 지불하는 공적 기금으로 재원을 마련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방송통신발전기금(방발기금)이나 정보통신진흥기금(정진기금) 등을 통신 복지비 명목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통 업계 관계자는 "이통 3사가 주파수 할당 대가로 방발기금이나 정진기금을 분담하는데 실상 기금의 상당 부분이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 제작 지원으로 들어간다"며 "20대 국회에서도 한 차례 논의된 만큼 해당 기금이 통신 복지 정책에 쓰일 수 있도록 정부가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방발기금은 방송통신발전기본법에 따라 방송통신 진흥을 지원하고자 마련된 기금이다.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가 공동 관리한다. 방통위가 관리하는 정발기금은 정보통신산업진흥법에 따라 정보통신 분야 발전을 촉진하고자 마련됐다. 두 기금 모두 주요 재원은 이통사의 주파수 할당 대가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