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계 "의견수렴 부족해"
ICT업계, 개보법 과징금 강화 내용 우려

정부가 개인정보보호법(이하 개보법) 2차 개정을 위한 입법예고 후 정보통신기술(ICT) 업계가 당혹감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정부는 입법예고 전 이해당사자의 의견을 묻는데, 이번 개보법 개정안 입법예고와 관련해서는 미흡했다는 것이다.

개보법 개정안에는 규제 자체의 실효성 논란과 함께 국내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 등 정부와 민간 기업 간 충돌 요인이 다수 포함돼 있다. 정부는 입법예고 후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듣겠다고 했지만, 출범한지 얼마 되지않은 개보위가 빨리 존재감을 드러내기 위해 법 개정에 속도를 낸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6일 전격 개인정보 보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입법예고했다. 2020년 12월 23일 개인정보보호법 2차 개정 계획을 발표한 지 2주만의 일이다. 개보위는 입법예고 기간 의견 수렴을 거치겠지만, 입법예고 기간 마지막날인 2월 16일까지 의견을 수렴할 수 있을지 부정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코로나19 상황에서 단 40일만에 모든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하고 관계 부처 간 협의를 이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하겠냐는 것이다.

정부가 입법예고 전 의견을 받는 것이 법적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세미나를 열거나 전문가와 민간을 포함한 연구반을 가동해 최대한 이견을 조정하려는 노력 부재는 문제가 될 수 있다.

ICT업계, 규제 강화와 국내외기업 역차별 우려

사업자들이 반발할 만한 규정이 포함해 있다면 더욱 이해관계자의 사전 의견 수렴이 필요하다. 이번 개정안에는 정보보호 관련 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을 담았기 때문에 개인정보를 필수적으로 다루는 ICT 업계의 우려가 크다.

인터넷업계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사전에 업계 의견을 듣고, 업계 대표 등이 포함한 연구반을 가동하는 등 단계를 거치는 데 이런 과정 없이 입법예고를 해서 놀랐다"며 "업계의 의견을 충분히 듣는 과정을 거쳤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정보 처리방침 심사제도를 도입하고, 시민단체 청구에 의해 가능하다는 내용이 포함됐던데, 이럴 경우 분쟁으로 비화할 우려가 있다"며 "몇몇 규정에 대한 우려들을 취합하는 중이며, 조만간 업계의 의견을 전달할 예정이다"고 말했다.

규제 강화로 비용 상승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었다. 드론 업계 한 관계자는 이동형 영상정보처리기기 운영 기준 마련(안 제25조의2)에 관해 "대기업은 대응하는 것이 용이하지만, 드론 사업자는 규모가 작은 회사가 많아서 또 다른 투자, 비용의 문제가 생겨 사업에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다.

조문별 제개정 이유서에 입법 추진과정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이 없다고 적시한 모습/ 개인정보위
조문별 제개정 이유서에 입법 추진과정에서 논의된 주요 내용이 없다고 적시한 모습/ 개인정보위
인터넷업계를 비롯해 ICT업계 대부분 과징금 규정에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개정안에는 EU 등 해외 주요국의 입법례에 따라 과징금 부과기준을 위반행위 관련 매출액에서 전체 매출액 3%로 상향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해외 기업은 규제하지 못한 채 국내 기업만 옭아매는 조항이 될 수 있다고 우려가 나온다. 구글과 넷플릭스 등 글로벌 기업의 국내 매출은 한국에 지사가 있더라도 제대로 파악하기 어려워 규제 실효성 논란이 뒤따른다.

정보통신업계 한 관계자는 "과징금 강화는 규제 대상이 결국 국내 사업자에 국한되는 역차별 소지가 있다"며 "공정거래위원회 등 다른 부처에서는 위반행위 관련 매출 3%를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는데 개인정보위에서만 유독 해외 사례를 참고해 과징금 기준을 달리하는 것이 법적 형평성 문제에 맞는 것인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 입장에서는 반대할 것이 뻔한 관련 업계에 입법예고 전 의견을 듣는 것을 부담스러워 할 수 있고, 법적 의무사항도 아닌 것은 맞다"며 "출범한 지 얼마 안 된 개보위가 존재감에 대한 조바심이 있어 규제 강화 움직임을 보인다는 얘기도 주변에서 들린다"고 덧붙였다.

개인정보위는 입법예고 절차에 문제가 없고, 법안 개정을 서두르지 않았다는 입장이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법안에는 사실 크게 새로운 내용이 없고, 기존에 논의됐던 사항을 반영한 것이 대부분이다"며 "과징금 규정에 대한 반발이 있는 것 같은데, 이는 이해 부족으로 인한 ‘오해'다"고 말했다.

이어 "형벌을 경제벌로 전환하는 것은 산업계의 요청에 따라 넣은 것이다"며 "전체 매출액 3% 기준은 시정조치를 반복적으로 어겼을 때 나오는 최대치이다"며 "공정거래법 상 담합은 관련 매출액 산정이 용이하지만 개인정보보호 위반 관련 매출은 산정이 어렵기 때문에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한 것이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업계의 우려처럼 기업의 부담을 늘리는 의도가 없었다는 것이다.

개인정보위는 규제를 강화하는 것의 위원회가 추구하는 방향이 아니라며 기업의 발전과 산업 육성 등의 기능을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정식 공청회 전 인기협, 코리아스타트업포럼, 대한상의 등과 만나 파견 간담회를 열 것이다"며 "입법예고 이후에도 이해관계자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노력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