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을 통해 학습한다는 것이 어색할 수 있지만, 게임 안에는 문학·과학·사회·상식 등 다양한 분야 숨은 지식이 있다. 게임을 잘 뜯어보면 공부할 만한 것이 많다는 이야기다. 오시영의 겜쓸신잡(게임에서 알게된 쓸데없지만 알아두면 신기한 느낌이 드는 잡동사니 지식)은 게임 속 알아두면 쓸데없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한 잡지식을 소개하고, 게임에 대한 이용자의 궁금증을 풀어주는 코너다. [편집자 주]
서비스 5년 차에 접어든 장수 서브컬처게임 ‘데스티니차일드’ 스토리 2장에는 ‘바토리’라는 캐릭터가 등장한다. 데스티니차일드는 게임 개발사 시프트업이 제작한 모바일 게임이다.
바토리는 원래 주인공의 적이었다. 작중에서 유서 깊은 악마 가문의 영애로 주인공과 함께 마왕 자리를 놓고 후보생끼리 겨루는 ‘마왕쟁탈전’에 참가했다. 하지만, 마왕이 되는 것 보다는 어여쁜 소녀를 애인으로 만드는 데 관심을 높다.
바토리는 악마지만 미션스쿨인 ‘세인트 미카엘 학교’에 잠입하기 위해 학생회장인 ‘엘리사벳’이라는 신분으로 위장했다. 이후 예쁜 아이들을 비밀 장소로 모아 돌봐준다. ‘학생 실종 사건’의 범인이라는 누명을 쓴 이유다. 이후 진범이 밝혀지면서 바토리는 주인공을 돕는 조력자가 된다.
에르제베트는 유럽의 귀족 가문 출신이다. 15세 때, 전쟁 영웅으로 활약한 5살 연상 페렌츠 나다스디 백작과 결혼한 후 슬로바키아의 차흐티제 성(Čachtice Castle)에 살았다. 그녀의 신분이 남편보다 높았으므로 성을 바꾸지 않고 계속 ‘바토리’라는 성을 썼다. 페렌츠 백작은 전쟁 때문에 집을 비우는 일이 많았고, 에르제베트는 집안의 재산과 사업을 관리했다. 남편은 1604년에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에르제베트는 사실 ‘피의 백작 부인(Blood Countess)’이라는 별명을 지닌 연쇄살인마다. 그녀가 살해한 사람의 수는 1568명이 넘는다는 추정도 있다. 이 탓에 바토리는 ‘가장 많이 살인을 한 여성’으로 기네스 기록에도 올랐다.
에르제베트는 1590년부터 1610년까지 무려 20년간 수많은 소녀를 죽였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가 살인을 시작한 계기는 우연히 하녀의 피가 자신에게 튀었을 때다. 피가 젊음을 유지하도록 돕는다고 믿게 됐다. 여성의 피를 얻기 위해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그녀는 몇몇 하인과 손잡고 차흐티제 성에 들어온 여성을 감금, 고문하고 피를 뽑아 목욕하거나 마셨다. 주변 지역에 소녀가 없어지자, 성 내에 여학교를 세워 귀족 자녀를 모아 범행을 저지르기도 했다. 이런 전설은 빠르게 퍼져, 흡혈귀나 젊음을 위해 소녀의 피로 목욕한 여성 등 이야기의 모티프가 됐다.
에르제베트의 악행이 소문으로 퍼지면서 1604년 루터교 인사가 문제를 제기했다. 1610년 헝가리 당국은 그녀를 수사했다. 약 7개월에 걸친 조사에서 52개의 증인 진술서가 나왔다. 진술서는 이후 300개로 늘었다. 결국 그녀의 범행에 가담한 하인은 참수 후 화형에 처해졌다. 에르제베트는 신분을 고려해 종신금고형을 선고받고 3년쯤 더 살다가 세상을 떠났다.
시프트업 관계자는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캐릭터를 만들 때 전설적인 이미지나 이야기를 가진 인물을 주로 차용한다"며 "특히 인물의 생애나 실제 성격보다는 상징적인 이미지에 집중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한 "게임 내에서는 산타의 원형 성 니콜라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 등 다양한 실존 인물 기반 캐릭터를 만나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데스티니차일드의 바토리도 ‘소녀의 피’라는 이미지에 맞춘 설정을 차용했다. 작중 바토리의 가문은 악마와 인간이 계약할 때 일반적으로 계약서를 작성하는 것과는 달리 계약자인 인간과 피를 나눠 마시면서 영혼의 결속을 강화하는 방식을 활용한다. 바토리는 어여쁜 소녀를 좋아하는 취향에 따라 ‘동반자’가 될 소녀를 모은다. 게임 내 바토리의 가명인 ‘엘리사벳’은 실존 인물의 이름과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오시영 기자 highssam@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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