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대 플랫폼 구글·아마존·페이스북·애플(GAFA)은 1년전 열린 CES 2020의 주인공이다. 이들 기업은 연결과 개인정보보호를 화두로 전시장 곳곳에서 존재감을 드러냈다. 하지만 올해 열린 CES 2021에서는 자취를 감췄다. 이들을 상대로 패권전쟁을 벌인 중국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의 굴기도 보이지 않았다. 코로나19와 미중무역분쟁 여파다.

GAFA와 BATH의 CES 속 부재 여파는 예상보다 컸다. 삼성전자, LG전자, 인텔, GM 등 각 분야의 강자들이 분전했다. 하지만 콘텐츠 미디어, 상거래, 클라우드, 운영체제(OS), 인공지능(AI) 등 거대 플랫폼이 지배 중인 영역 이슈는 거의 없었다. 한마디로 CES 2021은 ‘앙꼬 없는 찐빵’이었다.

13일(현지시각) IT업계의 시선은 ‘중대발표’를 앞둔 팀 쿡 애플 CEO의 입에 쏠렸다. 팀 쿡은 CES가 개최 중이란 사실 조차 잊은 듯 했다. 애플카와 협업하는 상대가 누구인지에 온통 관심이 쏟아졌다. CES와 무관하게 전기차 분야 주가가 널뛰기를 했다. 온라인 CES가 개최되든 말든 말이다.

구글은 CES에 불참했지만 존재감은 상당했다. 기업들은 CES 홈페이지에서 공식 프레스컨퍼런스를 열고 신제품을 소개했지만 실질적 CES 개최지는 유튜브였다. 삼성전자 프레스컨퍼런스 유튜브 영상 조회수는 3360만회에 달했다. 구글이 만든 영상 플랫폼 유튜브가 없었다면 온라인 컨퍼런스의 의미가 크게 퇴색될 수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하지만 CES에 참여했다고 해서 모든 기업이 관심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어렵게 참여한 스타트업들의 불만은 예상 외로 컸다. 인지도가 높은 기업의 온라인 페이지는 CES 홈페이지에서 쉽게 접속할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은 홍보상 고민에 쌓였다.

CES 2021 메인 화면 모습 / CES 2021
CES 2021 메인 화면 모습 / CES 2021
CES 2021 온라인 부스 수는 1960개쯤에 달하지만, CES 홈페이지 메인에 나오는 기업 바로가기 링크 수는 최대 96개다. 전체 참가 기업 수를 고려할 때 대부분 기업이 만든 온라인 부스에 접근하는 바이어는 많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 스타트업 관계자는 "저녁에 근무하며 온라인 사이트 방문 고객 응대에 나섰지만, 3~4명에 불과한 날도 있을 만큼 홍보하는데 어려움이 컸다"고 말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열린 온라인 CES는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무의미하다고만 평가절하할 수는 없다. 오프라인 부스가 없어도 전시회를 개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줬고, 개선을 위한 숙제를 만들어 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앞으로 열릴 글로벌 전시회장에 직접 가지 않더라도 다이나믹하게 행사를 즐길 수 있는 길도 열었다.

다만 현재와 같은 방식의 온라인 CES는 변화해야 한다. 돈을 많이 낸 기업이 기조연설이나 프레스 컨퍼런스를 꿰차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스타트업 등 작은 기업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 한국 기업은 CES가 수여한 혁신상 중 100개를 받았고, 이 중 스타트업은 32개를 수상했다. 기업의 인지도는 낮지만 미래 성장 가능성이 높은 기업은 더 다양한 홍보의 기회를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내년 열릴 CES 2022에서는 더 많은 진흙 속 진주를 캐낼 수 있기를 바란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