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vegan)’이 유통시장의 새로운 트렌드로 떠오르고 있다. 비건 시장은 매년 평균 9.6% 성장해 2030년에는 116조원 규모가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대체육을 중심으로 각광받던 비건 식품은 최근 라면부터 디저트까지 상품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비건인구는 150만명이다. 유통업계는 비건을 포함해 채식을 선호하는 인구 수가 1000만명쯤으로 추산했다.

비건 시장 성장 키워드는 ‘가치 소비 확산’이다. 세계적으로 환경·지속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MZ세대를 중심으로 소비를 통해 가치관이나 신념을 표시하는 ‘소신 소비’ 트렌드가 확산된 것이 식품업계가 앞다퉈 비건 인증 제품을 내놓게 된 원동력이라는 분석이다.

베지가든 대체육 제품. / 농심
베지가든 대체육 제품. / 농심
식품업계는 ‘비건 제품은 맛이 없다’는 기존 소비자 편견도 깨부수고 있다. 26일 유통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비건 식품이 건강하지만 맛이 없고 까다로운 사람들이 먹는 음식이라는 선입견이 팽배했지만, 지금은 맛도 괜찮아 젊은 소비층을 중심으로 소비가 늘고 있다"라고 말했다.

풀무원식품은 지난해 8월말 국내 선보인 비건 라면 ‘자연은 맛있다 정면(이하 정면)’이 올해 1월초 누적판매량 200만 봉지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뛰어난 맛으로 굳이 채식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평가를 얻고 있다는 설명이다. 정면은 지난해 11월 한국비건인증원의 비건식품 인증을 획득했다.

이대규 풀무원식품 제품매니저는 "정면은 기존 비건 라면의 부족한 점들을 크게 보완해 ‘맛으로 승부하는 비건 라면’이라는 점을 내세운 덕분에 좋은 평가를 받는 것 같다"고 말했다.

최근 비건 인증 식품은 증가추세다. 정식품은 최근 한국비건인증원으로부터 19개 채소와 과일즙을 담은 ‘건강담은 야채가득 V19’과 국내산 생식 제품 ‘리얼 자연담은 한끼생식’의 비건 인증을 획득했다.

사조대림은 최근 콩비지와 두부를 활용한 비건만두 ‘대림선 0.6 순만두·채담만두'를 선보였다. 두 제품 모두 비건 인증을 받았다. 채소의 함량이 40% 이상이며, 육류를 일체 사용하지 않고 100% 순식물성 단백질로 제조한 것이 특징이다.

사조대림 한 관계자는 "채식은 단순 유행을 넘어 하나의 생활방식으로 자리잡고 있다. 고기 없이 고기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음식에 대한 소비자 관심도 높아지고 있고, 다수의 식품업체들이 앞다퉈 관련 상품을 선보이고 있다"라고 말했다.

농심그룹은 올해 비건 식품 브랜드 ‘베지가든'을 론칭하고 본격적으로 비건 식품 사업에 나섰다. 대표 제품은 식물성 대체육과 식물성 치즈, 소스 등 18개 제품이다. 대체육의 경우 떡갈비 등 한국식 메뉴를 접목한 조리 냉동식품으로 판매된다. 농심은 ‘고수분 대체육 제조기술(HMMA)’로 실제 고기와 유사한 맛과 식감, 고기 특유의 육즙도 구현했다고 설명했다.

대체육은 비건 식품 카테고리 중에서도 가장 주목 받는 시장이다. 시장조사업체 CFRA는 2018년 22조원 규모였던 글로벌 대체육 시장 규모가 2030년 116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롯데푸드도 식물성 대체육에 드라이브를 걸었다. 2019년 4월 김천공장에서 밀 단백질을 기반으로 만든 ‘제로미트 너겟’과 ‘제로미트 까스’를 생산하면서 대체육 생산에 나섰고, 지금까지 6만개 이상이 판매됐다.

회사는 최근 청주공장을 통해 ‘제로미트 베지 함박' 등의 제품을 만들어 선보였다. 밀 단백질을 사용했던 너겟, 까스 제품과는 달리 대두 추출 단백질을 사용했다. 소고기, 돼지고기와 같은 식감을 구현하기 위해 1년간 연구해 만들었다는 설명이다.

SPC삼립은 식물성 단백질로 달걀 맛을 구현한 미국 푸드테크 기업 잇 저스트(Eat JUST)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 제리양 야후 창업자, 홍콩 최대 부호 리카싱 등이 투자한 스타트업이다.

잇 저스트의 대표 제품 ‘저스트 에그'는 녹두에서 추출한 식물성 단백질로 달걀 맛을 낸 제품이다. 콜레스트롤이 없고 포화지방이 낮아 비건, 달걀 알러지가 있는 소비자들에게 호응을 얻었다. 윤리적·환경적 가치를 추구하는 ‘가치 소비’트렌드 확산으로 미국·중국·홍콩·싱가포르 등지서 3000만 개가 판매됐다.

SPC삼립은 잇 저스트와 파트너십을 통해 향후 프라이, 패티, 오믈렛 등 카테고리를 확장하고 비건 제품을 적극 개발해 푸드 사업 역량을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