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컨설팅업체인 맥킨지앤드컴퍼니는 스마트폰을 ‘찻잔 속 태풍’ 아이템이라고 평했다. 스마트폰 대중화에 상당 시간이 걸리고, 피처폰 시대가 지속할 것이란 내용을 담은 2007년쯤의 보고서다.

LG전자는 맥킨지의 조언을 철썩같이 믿었다. 애플이 아이폰을 처음 선보인 순간에도 피처폰 개발과 마케팅에만 열을 올렸다.

스마트폰 개발을 등한시한 대가는 가혹했다. LG전자 MC사업본부는 초콜릿폰·프라다폰의 잇달은 히트로 2008~2009년 2년 연속 1조원이 넘는 흑자 잔치를 벌였지만, 2010년엔 적자로 돌아섰다. 글로벌 스마트폰 시장은 애플과 삼성전자 투톱으로 재편됐다. 이후 LG전자는 단 한번도 이들의 자리를 위협하지 못했다.

주변에서는 2015년 2분기 이래 이어진 스마트폰 사업 적자 행진이 빨리 끝나길 원했다는 말이 많았다. 외부의 조롱섞인 시선을 딛고 스마트폰 사업에서 보란듯 성공하는 모습을 기대했다. 경쟁사에서도 삼성 못지 않은 스마트폰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주어지길 바라는 소비자의 마음에서다.

하지만 LG전자는 결국 스마트폰 사업 철수를 눈앞에 뒀다. 베트남 빈그룹 등 외부에 사업부를 매각하는 구체적 방안이 유력 제기된다. 시장 반응이 나쁘지 않다. 적자 사업을 털고 미래 먹거리인 전장에 집중할 수 있다는 기대섞인 전망이 나온다. 주가도 상승세다. 5조원이 넘는 적자를 낼 때까지 굳이 사업을 끌어온 게 아쉬울 정도다. 애초에 접어야 할 사업이었을까.

LG전자는 2007년 맥킨지 컨설팅 의뢰 전 ‘답정너(답은 정해져있고 넌 대답만 하면 돼)’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경영진 스스로 잘못된 방향을 설정하고, 입맛에 맞는 컨설팅을 덧붙였다는 얘기다. 결과에 대한 책임도 맥킨지가 아닌 남용 전 부회장이 졌을 뿐이다.

실제 LG전자가 전적으로 맥킨지를 신뢰했던 것은 아니다. 맥킨지는 1999년 LG그룹에 "가전 사업은 수익을 내기 어려워, 제너럴일렉트릭(GE)에 매각하는 편이 낫다"고 조언했다.

당시에는 합리적 의견이었다. 가전은 인건비 비중이 커 수익성을 높이기 어려웠다. 선진 업체와 격차는 줄일 수 없을 것만 같았고, 중국 업체의 추격은 거셌다.

하지만 LG전자는 맥킨지가 틀렸다는 것을 입증했다. 모듈화를 통한 제조공정 혁신으로 수익성을 개선했고, 냉장고·세탁기·에어컨을 넘어 공기청정기, 스타일러 등 신가전으로 시장 판도를 바꿨다.

LG전자가 ‘휴대폰 사업에서도 맥킨지 조언을 듣지않았다면 어땠을까’라는 아쉬움이 문득 머릿속을 스친다. 매각을 눈앞에 둔 상황이 아니라 애플, 삼성과 함께 확고한 3강 구도를 형성하진 않았을까. 의미없는 가정이다. 가전과 휴대폰 사업의 희비를 보며 현재의 판단이 과거 내린 판단 보다 낫다는 보장도 없다는 결론이 선다. LG전자는 이미 찻잔 속 태풍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이번 결정이 10년 뒤엔 ‘신의 한수’로 평가받길 바란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