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 시장이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차값은 오르는데 선택지가 너무 적다. 소비자들이 외면할 수 밖에 없다. 더 큰 차, 더 비싼 차를 사도록 시장이 강제하는 구조다.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문제가 있다.

최근 자료를 보면 2020년 국내 완성차 시장에서 판매된 경차는 9만6231대에 그쳤다. 2008년 이후 처음으로 ‘10만대' 선이 무너졌다. 자동차 내수 판매량은 5% 정도 늘었는데 경차 시장은 14% 뒷걸음질쳤다.

자동차관리법 상 경차는 엔진 배기량 1000㏄ 미만에 길이 3600㎜, 너비 1600㎜, 높이 2000㎜ 이하인 자동차다. 경차는 아담한 크기로 운전하기 쉽고, 가격도 저렴하다. 입문용 차로 오랜 시간 사랑을 받아왔다. 한 때 국내에서 판매되는 차 4대 중 1대가 경차였을 정도다.

국산차 업체들은 소비자들이 경차를 선택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수요가 많지 않으니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신형 경차를 개발하기 어렵다는 논리다. 하지만 마진이 적은 경차보다 고가의 제품군을 더 많이 팔고 싶다는 것이 제조사들의 솔직한 속내일 것이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판매되는 경형 승용차는 기아 모닝과 레이, 쉐보레 스파크 등 단 3종에 불과하다. 차종이 늘지도 않거니와 기존 제품의 완전변경차가 출시된지도 5년이나 지났다. 이 기간 출시된 소형 SUV 차량 수가 10종이 넘는 것과 대비된다. 이쯤되면 완성차 업체들이 경차 시장을 방치한다고 볼 수 밖에 없다.

경차 시장 붕괴는 여러 위험요소를 동반한다. 경차시장이 무너지면 소비자 체감 물가가 오른다. 이미 생애 첫 차로 신차를 고민하는 소비자들이 2000만원대 가격이 적힌 견적서를 받아들고 고민하는 시대가 왔다. 경차로 눈을 돌리고 싶어도 1000만원대 후반대 가격표를 보고 준중형 세단이나 소형SUV로 돌아서는 일이 많아졌다. 판매실적이 이를 뒷받침한다.

자동차 배출가스 관리로 봐도 경차를 쉽게 포기해선 안된다. 최근 하이브리드와 배터리 전기차 등 친환경차 판매가 늘어난 건 사실이다. 하지만 모든 내연기관차가 전동화 차량으로 교체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이 기간 동안 늘어나는 신차 수요가 배기량이 큰 차로 채워져선 곤란하다.

자동차 회사들의 핑계(?)와 달리 소비자들은 여전히 개성 있는 디자인과 알찬 구성의 경차를 원한다. 병행수입 업체들이 다루는 주요 상품이 일본산 경차라는 점은 이를 방증한다. 경차 천국인 일본은 8개 제조사에서 50종 이상의 경차를 투입해 치열한 경쟁을 펼친다. 집요함까지 느껴지는 일본 경차의 상품성은 브랜드 전체의 경쟁력 강화로 이어졌다. 국산 경차의 부활이 한국 자동차 상품성 신장으로 이어진다 말한다 해도 너무 심한 비약은 아닐 것이다.

안효문 기자 yomu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