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을 말았다 펼치는 롤러블(Rollable) TV ‘LG 시그니처 올레드 R’가 출시된 지도 3개월이 지났다. 하지만 현재까지의 판매량은 채 10대도 안된 것으로 확인됐다. 애초 LG전자가 기술력을 과시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제품이지만, 한 자릿수 판매량은 기대치에 훨씬 못 미치는 수준이다.

7일 LG전자 내부 소식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이 아직 국내에서 10대도 팔지 못한 게 맞다"며 "세계 첫 롤러블 TV라는 상징성 때문에 많은 관심을 받았지만 실제 판매로 이어지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밝혔다.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LG전자 모델이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을 살펴보고 있다. / LG전자
서울 중구 소공동 소재 롯데백화점 본점에서 LG전자 모델이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을 살펴보고 있다. / LG전자
LG전자는 2020년 10월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을 국내에 공식 출시했다. 출하가격은 1억원이다. 이 제품은 문재인 대통령 공식 행사에만 6번 등장해 주목을 받았다. 1월 27일에는 문 대통령의 특별연설에서 대통령 맞은 편에 자리해 화상회의 질문자의 영상을 송출하는 역할을 맡았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이 국내 VVIP 고객 공략에 실패한 결정적 원인은 크기다. 이 제품은 65인치(대각선 길이 약 163㎝) 단일 규격으로 출시됐다. ‘거거익선(화면이 클수록 좋다)’ TV 트렌드에 부합하지 못했다는 설명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VVIP 고객 대부분이 70인치대 이상 크기 TV를 보유했다고 가정할 경우, 롤러블 기능을 이유로 굳이 더 작은 TV를 구매하기엔 메리트가 떨어진다"며 "최근 프리미엄TV 대형화 트렌드를 감안하면 결국 65인치 크기가 발목을 잡은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이 기대 이하 판매 실적을 보이자 LG전자가 롤러블 TV 대중화 의지를 접었다는 얘기도 들린다. 현재로선 LG전자가 더 큰 사이즈의 롤러블 TV를 추가 출시할 가능성은 낮다. 65인치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이 처음이자 마지막 롤러블 TV로 남을 수 있는 셈이다.

이 제품에 대형 플렉시블 OLED 디스플레이를 공급한 LG디스플레이도 전용 패널 개발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다. LG디스플레이 입장에서는 일정 수준의 판매를 보장할 수 없는 제품을 위해 더 큰 사이즈의 플렉시블 OLED를 개발 및 생산하는 것에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은 해외 출시를 기점으로 세계 첫 롤러블 TV라는 자존심을 회복할 수도 있다. LG전자는 3월 중 북미·중동·유럽시장을 노크하며 판매 돌파구를 찾을 계획이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LG 시그니처 올레드 R의 내수 판매는 부진했지만, 크기에 덜 민감하고 최고급·희소성에 가치를 두는 해외 고객을 타깃으로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기대감이 있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