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배터리 동맹이 흔들린다. 유럽과 함께 세계 최대 규모 전기차 시장으로 성장 중인 중국의 위력 영향이다. 배터리 업계는 2020년 상반기부터 현대자동차그룹과 K배터리 3사가 똘똘 뭉쳐 글로벌 시장을 이끄는 그림을 구상했지만, 1년도 안 돼 균열 조짐을 보인다.

9일 자동차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전기차 전용 플랫폼(E-GMP) 배터리 3차 입찰에서 중국 CATL에 절반 이상 물량을 발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2일 중국 매체 차이롄사는 현대차가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 공급 업체 중 한 곳으로 CATL에 이어 BYD(비야디) 산하 푸디전지를 선정하고 협업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20년 6월 22일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각사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수석부회장(왼쪽)과 구광모 LG그룹 회장이 2020년 6월 22일 LG화학 오창공장에서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각사
앞서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은 2020년 5월부터 삼성SDI, LG에너지솔루션, SK이노베이션 공장을 직접 방문해 배터리3사와 연쇄 회동을 가졌다. 현대차가 준비 중인 차세대 전기차에 3사 배터리가 골고루 올라탈 것이란 기대감이 커졌다.

하지만 현대차가 최근 K배터리 대신 중국 기업과 공급망을 강화하는 모습에 애초 존재하지 않은 ‘동맹’의 허상이 드러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배터리 업계에서는 현대차가 중국 전기차 시장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하기 위한 선택을 한 것으로 본다. 중국산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 위주로 보조금 혜택을 몰아주는 중국 정부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는 분석이다.

현대차·기아의 2020년 중국 판매량은 66만4744대다. 2019년 대비 26.9% 감소했다. 최대 판매를 달성한 2016년(179만2022대) 대비 62.9% 줄었다. 현대차와 기아는 2021년 해외 판매 목표를 15~16% 늘려 잡았는데, 부진했던 중국시장에서 수요 회복이 관건이다.

현대차가 1·2차 E-GMP 공급사였던 SK이노베이션과 LG에너지솔루션의 그림자를 지울 만한 명분도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2020년 발생한 코나EV 화재 이슈가 정리되지 않아 공급사 선정에 부담이 따른다. SK이노베이션은 LG에너지솔루션과 소송 이슈로 미국 조지아주에서 수입금지 조치가 내려질 가능성이 있어 많은 비중을 수주하기에 리스크가 컸다.

삼성SDI의 경우 유력한 신규 공급처로 기대를 모았지만, 각형 또는 원통형 배터리를 주로 생산한다는 점이 파우치형을 선호하는 현대차의 입맛을 충족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LFP(리튬인산철) 각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CATL은 2·3차 연속 현대차에 공급이 유력하다. 배터리 형태가 결격 사유는 아닌 것으로 풀이된다.

2011년 설립된 CATL은 업력이 짧지만, 중국 정부의 지원에 힘입어 짧은 시간 내 세계 1위 배터리 생산 기업으로 성장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내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52%쯤은 CATL이 차지했다.

CATL은 글로벌 완성차들과 잇따라 협력 수위를 높이며 K배터리를 위협한다. 테슬라에 이어 GM, 다임러와도 손을 잡았다. 2023년 가동을 목표로 독일 에르푸르트에 연간 14GWh 규모의 배터리 셀 공장을 건설 중이다. 중국국제금융공사(CICC)는 2020년 95GWh인 CATL의 생산능력이 2021년 말 160G~185GWh로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세계 전기차 시장의 절반쯤을 차지하는 중국 시장은 사실상 반강제로 CATL 배터리를 쓸 수밖에 없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라며 "3차 공급사로 CATL과 SK이노베이션이 선정될 경우 현대차는 중국시장과 내수용에는 CATL 배터리를 탑재하고, 미국·유럽시장에는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탑재시킬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