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추후 임상 결과를 제출하는 조건으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조건부 허가를 내줬다. 접종 연령은 만 65세 이상 고령층을 포함한 성인이다. 다만 사용상 주의사항에 ‘65세 이상의 고령자에 대한 사용은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는 문구를 기재하며 실질 접종은 의료진 판단 아래 시행토록 했다. 사실상 의료진에 위험부담 책임을 떠넘긴 셈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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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진에 위험부담 책임 떠넘긴 정부

10일 식품의약품안전처 최종점검위원회는 회의에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안전성과 효과성을 인정하며 이같은 판단을 내렸다. 영국 임상2·3상과 브라질 임상3상 등 2건의 임상에서 도출된 예방효과(62%)를 높이 평가했다. 또 여태까지 보고된 이상 사례가 대부분 백신 투여와 관련된 예측 가능한 이상사례인 만큼, 전반적으로 양호하다고 판단했다.

고령층 백신 투여와 관련해 안전성 만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입장이다. 김강립 식품의약품안전처장은 "만 65세 이상의 고령층에 접종금지 권고를 내릴만한 이유는 찾지 못했다"고 밝혔다. 다만 아직 고령층 대상 임상 데이터가 부족한 만큼, 의료진이 접종 대상자 상태에 따라 접종 여부를 결정하도록 했다.

현장에서 의료진 개인 판단에 따라 접종을 유보할 경우 정부의 고령층 우선접종 방침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지적에 김 처장은 "접종 우선순위는 질병청이 관련 전문가들과 예방접종위원회에서 결정할 사항이다"라며 질병청에 공을 넘겼다.

그는 이어 "예방접종위원회는 식약처가 허가사항을 점검하며 논의한 내용과 사용상 주의사항 등을 종합 판단해 접종계획을 수립한다"며 "허가는 의약품을 사용하는데 있어 필요조건이지만, 실질 활용은 임상 현장에서 의료진 판단에 따라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허가는 의약품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행정적 절차에 불과하지만, 실질 접종 판단은 의료진이 해야 한다며 위험부담을 떠넘긴 것이다.

대한의사협회는 이 같은 정부의 결정에 ‘책임회피’라고 비판한다. 의협 측은 "접종이 시작된 후 65세 이상에서 이상반응이 보고되면 접종을 결정한 의사가 책임지는 문제가 생길 가능성이 높다"며 "어떤 의사도 지금 접종하라고 자신 있게 권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라고 우려했다.

예방접종위원회 일정은 확정되지 않은 상태다. 위원회가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현장 의료진은 그에 따라 접종을 시행하게 된다.

세계 보건당국은 아스트라제네카 고령층 접종 제한

우리나라와 달리 세계 주요국은 보건당국이 나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고령층 접종을 제한하고 있다. 고령층의 효능 증명 자료 등이 충분치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에 대한 조건부 판매를 공식 승인했음에도, 독일과 프랑스, 스웨덴, 오스트리아, 노르웨이 등이 만 65세 미만에 대해서만 접종을 권고한 상태다. 폴란드는 60세 미만 접종, 이탈리아와 벨기에는 55세 미만 접종으로 연령 기준을 낮췄다.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사용승인 자체를 거부한 국가도 있다. 스위스 의약품 관리당국인 스위스메딕은 임상 시험 자료가 부족하다며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사용을 승인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모든 연령대에 대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접종을 거부한 셈이다. 스위스는 EU 회원국이 아닌만큼 EMA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 밖에도 남아프리카공화국도 변이 바이러스에 효과가 제한적이라는 이유로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의 사용을 보류했다.

국내 대학병원 한 관계자는 "해외에서도 고령층의 아스트라제네카 백신 투여를 제한하는 상황에서 우리나라 국민이 임상3상을 해주게 생겼다"며 "예방접종위원회 가이드라인이 나와봐야 알겠지만, 의료진 입장에서도 위험부담을 모두 안아가면서 쉽게 접종을 하지는 못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