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자동판매기를 통한 주류 판매를 허가했지만 성인인증을 거치는 온라인몰에서의 술 판매는 여전히 금지했다. 사회적 거리두기 여파로 집콕족과 e커머스 거래량이 폭발적으로 늘었지만, 술에 대한 정부규제 만큼은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는 실정이다.

국세청은 1월 국세행정운영방안 발표를 통해 자동판매기를 통한 주류 판매 규제를 풀기로 결정했다. 2020년 신분증과 생체인식 기술을 도입한 자판기가 관련 규제를 통과하면서 자판기 주류 판매를 허용한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국세청은 앞서 맥주와 소주 등 주류 가격이 음식 가격보다 낮은 경우 배달 판매할 수 있게 했고, ‘스마트 오더' 방식으로 모바일로 선주문한 주류를 편의점 등에서 받을 수 있게 관련 규제를 완화한 바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경우 주류 스마트 오더 도입으로 와인 매출이 46% 늘었다.

하지만 온라인몰 등 e커머스에서의 주류 판매는 아직 규제 대상으로 남아있다. 스마트 오더가 호평을 받았지만 오프라인 매장에서 구입하는 점은 다르지 않다. 최근 성인인증을 통해 담배제품도 온라인몰에서 판매되고 있는 마당에 술 판매가 금지되고 있는 것은 차별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아마존 등 해외 온라인몰에서는 다양한 주류가 판매되고 있다. 국내 소비자는 해외직구를 통해 술 상품을 살 수 있다. 정부에 주세와 관부가세만 납부하면 문제가 없다.

한국은 주세법을 통해 소비자의 온라인 술 구매를 허용한다. 하지만 판매는 규제한다.

유통업계는 온라인 주류 판매 규제가 좀처럼 풀리지 않는 이유에 대해 국민건강문제와 동네상권 타격 등 영향이라고 평가한다. 주류 구매가 쉬워지면 청소년 음주가 늘어나고, 온라인몰에서 맥주·소주가 판매되면 동네 슈퍼마켓 매출에 타격을 받는다는 논리다.

유통업계는 청소년 음주 문제와 온라인 주류 판매 간 상관관계가 크지 않다고 분석한다. 각종 인증절차를 통해 구매자의 성인 여부를 판별하고 있는데, 미성년자가 신분을 위조해 술을 구매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온라인 유통을 막는 것은 과하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성인 대상으로 판매하는 담배는 물론 영화 콘텐츠의 서비스도 막아야 한다.

유통업계는 온라인에서 판매하지 않아도 증가세를 보인 미성년자 주류판매 적발건수를 낮추기 위해 판매 규제가 아닌 꾸준한 캠페인을 통해 개인 스스로 경각심을 높일 수 있게 만드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꼬집는다.

동네상권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재 유통업계는 익일배송을 넘어 새벽배송, 1시간배송 등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동네상권이 생존할 수 있는 방법은 장보기 플랫폼 등 틈새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서비스 활성화를 고려하는 것이다. 비대면을 선호하는 MZ세대가 소비주축으로 올라온 이상 과거의 유통방식을 고집할 수만은 없다는 것이다.

덕 맥밀란 월마트 CEO는 비대면으로 치뤄진 올해 CES 기조강연을 통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바뀐 소비행동은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다수의 국내 유통업계 관계자들 역시 코로나가 종식되도 비대면 소비 선호현상은 유지될 것으로 내다봤다.

온라인 시장의 활성화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정부가 담배나 성인 콘텐츠의 온라인 유통을 풀어준 가운데 주류만 막는 것은 형평성 원칙에서 어긋나며 산업 발전에도 역행하는 처사다. 지금이라도 빗장을 풀어 국내 주류·유통 업계의 경쟁력 상승에 도움을 줘야 할 것이다.

김형원 기자 otakukim@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