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가격이 16일 사상 처음 5만달러를 돌파하며 가상자산이 제2의 전성기를 맞았다. 우리나라도 금융권에서 움직임이 조금씩 일고 있지만, 정부의 가상자산 금지 기조가 여전하다는 점에서 해외와 같은 공격적인 가상자산 포섭은 어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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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는 가상자산 투자에 ETF승인까지 ‘봇물’

16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해외 금융권이 가상자산 시대를 열기 위해 본격적인 준비에 한창이다. 그간 가상자산을 부정적으로 평가하던 해외 금융기관 조차 관련 상품 출시를 검토하는 등 발빠르게 움직인다. 가상자산을 선호하는 밀레니얼 세대 등을 새로운 고객층으로 확보하려는 전략이다.

일례로 비트코인에 부정적인 입장을 유지하던 모건스탠리는 투자 전문 자회사 카운터포인트글로벌을 통해 비트코인에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카운터포인트글로벌은 약 166조원의 자산을 운용하는 대형 자산운용사다. 모건스탠리는 앞서 비트코인을 대거 사들인 나스닥 상장사 ‘마이크로스트레티지’ 지분 11% 가량을 확보하면서 관심을 드러냈다. 최근에는 비트코인이 미국 달러화와 경쟁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간하기도 했다.

골드만삭스도 비트코인 취급을 논의하고 있다.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골드만삭스는 최근 내부적으로 비트코인 관련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가상자산 시장 진입 준비에 한참이다. 골드만삭스는 앞서 2017년 가상자산 거래 사업 준비에 나섰지만, 시장 불안정성을 이유로 사업을 접었다. 외신들은 골드만삭스의 이번 행보를 두고 "가상자산 시장에 제 2의 전성기가 오면서 골드만삭스가 시장에 다시 진출하기 위한 준비 작업을 서두르고 있다"고 분석했다.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준비하는 은행도 있다. 뉴욕 전통 은행인 뉴욕멜론은행은 "가상자산이 주류로 편입되는 현 시장 상황을 고려해 수탁 서비스에 뛰어든다"고 밝혔다. 현재 은행 측은 관련 플랫폼 개발을 거의 마친 상태다. 어떤 가상자산을 취급할지는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글로벌 투자은행 도이체방크도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외신에 따르면 도이체방크는 세계경제포럼에 제출한 보고서에 "전통 은행과 금융기관에 보다 편리한 디지털 자산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며 "가상자산 거래 및 토큰 발행 플랫폼을 구축하고 기관 전용 종합 스토리지 솔루션을 제공하겠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캐나다에선 비트코인 상장지수펀드(ETF)가 승인됐다. 북미 지역 최초다. 비트코인 ETF란 비트코인 가격 움직임에 연동돼 운용되는 상품이다. 기존 ETF처럼 비트코인 ETF도 증권시장 보통주처럼 투자자 사이에서 거래되며 하루종일 가격이 변동될 수 있다.

한국도 기지개 켜나…"정부 기조 아쉬워"

한국 금융권도 가상자산 시장에 서서히 발을 들여놓는 분위기다. 다만 명확한 정책 없이 ‘가상자산 금지’를 외치는 정부 기조 탓에 해외만큼 진취적으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거나 비트코인에 투자를 집행하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국내 일부 은행권은 ‘기관 대상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통한 시장 진입을 꾀한다.

예컨대 KB국민은행은 가상자산 수탁 서비스를 개시하기 위해 블록체인 투자사 해시드 등과 ‘한국디지털에셋(KODA)’를 설립했다. 비트코인 수탁 서비스를 시작으로 지원 종목을 늘려나간다는 계획이다.

신한은행은 가상자산 수탁 시장 진입을 위해 관련 전문 기업인 ‘한국디지털자산수탁(KDAC)’에 전략적 지분투자를 단행했다. 블록체인 기술사와 거래소, 리서치 기업 등과 함께 수탁 서비스 R&D를 진행하고 공동사업을 추진할 계획이다. 은행 측은 수탁 서비스와 디파이(Defi, 탈중앙화금융) 등 가상자산 서비스 전반의 사업적 역량 확보를 목표하고 있다.

소수 증권사와 벤처캐피털은 가상자산 거래소 등에 투자를 단행했다. TS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펀드 참여 방식으로 두나무에 투자를 집행했다. 두나무는 가상자산 거래소 ‘업비트’ 운영사다. 구체적인 투자 규모는 공개되지 않았다.

한화투자증권은 583억원을 들여 미국 IT기업 퀄컴이 보유한 두나무 지분 6.15%(206만9450주)를 확보했다. 한화투자증권 측은 "코로나19 이후 디지털 금융 중요성이 커져 투자에 나섰다"며 "핀테크 성장세 대응을 위해 신기술 보유회사에 중장기적으로 투자한다"고 설명했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비트코인 등 가상자산을 향한) 해외 금융기관 반응이 워낙 폭발적이라 국내 금융권의 비트코인을 바라보던 보수적인 시각이 점차 누그러지고 있다"면서도 "아쉬운 것은 정부 기조 탓에 금융권이 자체적으로 가상자산과 관련된 새로운 상품을 출시하는 것에 대해 아직도 조심스러운 입장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오는 3월 시행될 ‘특정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와 협업하려는 은행이 많아지는 이유다"라고 덧붙였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