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산업 규제가 쏟아지는 가운데 국회가 오히려 정보통신기술(ICT) 산업 성장을 가로 막고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법안 필요성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규제를 확대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입법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위한 제도 마련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대한민국 ICT 규제 대변혁을 위한 토론회 현장 모습 /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네이버TV 갈무리
대한민국 ICT 규제 대변혁을 위한 토론회 현장 모습 /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네이버TV 갈무리
심우민 경인교대 입법학센터장은 18일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경인교대 입법학센터, 규제개혁 당당하게가 공동주최한 '대한민국 ICT 규제 대변혁을 위한 토론회'에서 20대 국회 ICT분야 입법활동 연구를 발표했다.

연구에 따르면 지난 20대 국회에 발의된 주요 ICT 법안 중 규제 관련 법안이 73%에 달했다. 이 중 92%가 국회의원 발의 법안이고 상임위원장 발의가 5%로 사실상 의원 발의 법안이 차지하는 비율은 97%로 절대 다수다.

문제는 이들 법안이 입법 필요성과 방식에 관한 정책적 판단 및 검토가 충분히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를 이유로 이들 법안의 69%가 폐기됐다. 심 센터장은 "법안을 발의해 여론만 만들어놓고 실제 심의는 하지 않는 경향이 나타난다. 정치적 편의성에 의존한 것이다"며 "입법 필요성에 대한 분석이나 검토가 진지하게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정부의 ‘청부입법’도 문제로 지적됐다. 청부입법은 정부가 법률안을 국회의원에 청탁해 발의하는 관행을 말한다. 정부 발의안은 법제처 심사, 국무회의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지만 의원 발의는 의원 10명의 서명만 받으면 되기 때문이다.

김도승 목포대 법학과 교수는 "정부가 입법절차를 우회하는 방식으로 청부입법을 하게 되면 합리적인 논의 과정이 사라진다"며 "다른 부처와 갈등, 과잉 규제 문제가 발생하는 이유다. 정부가 강력한 신호를 보내 청부입법이 남용되지 않도록 개선해야 한다"고 했다.

구태언 규제개혁 당당하게 대표활동가도 "대기업과 스타트업에 동일한 규제를 적용하는 등 규제가 필요한 근본적인 원인을 제대로 고민하지 않은 채 수백개 법안을 통과시키는 시스템이 문제다"라며 "정부가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공공부문 개혁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입법영향평가제도'를 제안했다. 법안이 미치는 영향을 사회과학적 방법으로 분석하고 법안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의 입장과 의견을 체계화해 입법자들의 판단을 지원하는 방식을 의미한다.

심 센터장은 "온라인 플랫폼 규제만 보더라도 유럽연합의 경우 초안을 내놓고 관련 영향 평가를 진행하고 있지만 우리는 법안 통과에만 초점 맞추고 있다"며 "절차적 과정을 갖춰야 효과적인 입법이 이뤄질 수 있다. 전문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또 과정을 문서화해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고 했다.

정준화 국회입법조사처 박사도 "시장의 자정 조정 능력을 믿기 보다는 제도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시각 강해서 빠른 입법이 이뤄지고 있다"며 "좋은 입법을 만들기 위해선 현재 제도가 어떻게 돌아가고있는지 구체적인 실태조사 선행돼야 한다"고 했다.

이에 김준모 과기정통부 디지털신산업제도과장은 "일선 공무원이 규제를 개선하거나 바꿔보겠다는 의지가 없는 건 아니다"며 "여러 이해관계자의 반대나 책임에 대한 문제 때문에 의지와 무관하게 주춤하는 경우가 있다. 적극 행정에 대한 면책제도 등 제도적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장미 기자 mem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