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전문가는 AI가 일자리를 대체하는 동시에 새로운 일자리도 만든다고 말한다. 가장 많이 드는 예시가 ‘마부와 자동차’다. 자동차의 등장으로 마부가 직업을 잃었지만, 자동차 분야에서 새로운 직업이 생기고 거대한 산업으로 발전했다는 논리다.

틀린 말은 아니다. AI도 자동차와 비슷하게 발전하고 더 큰 산업을 일굴 수 있는 핵심 기술이다. 정부는 디지털 뉴딜을 통해 디지털 일자리 만들기에 나섰다. 목표 수치는 2025년까지 190만개에 달한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교육부 등은 AI 전문가 양성을 위한 계획을 앞다퉈 발표했다. 충분히 매력적인 이야기로 들린다. 하지만 정부가 함정에 빠져 너무 ‘앞’만 보고 있다.

일자리 수는 더하기 빼기로 계산할 수 있는 단순한 것은 아니다. 일자리 하나에 가정의 존폐까지 달려있다. 정부의 디지털 일자리 정책을 보는 시선이 곱지 않은 이유다.

국내외에서 발간된 보고서를 종합하면, 2050년 기존 일자리 100개가 새로운 직업군으로 대체되고, AI가 만들어낸 신규 일자리 수는 120종에 달한다. 단순 계산으로는 일자리가 ‘20개’ 늘어난다. 정부는 여기에 주목했다. 새롭게 생기는 일자리로 고용률을 올리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일자리에 일하던 100명이 새로운 일자리 120개에 자리 잡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 오히려 100명은 AI 기술 발달 후 사회에서 배제되는 등 실직 상태일 수 있다. 수치적으로는 일자리가 늘어났다 해도 사회에서 배제되는 인원은 더 늘어날 수 있다. 사회 양극화의 원인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미국 상원은 이미 이런 점을 오랫동안 경고했다. 상원은 2020년 미국 정부에 AI 도입으로 대량의 실직이 예상되는 블루칼라를 위한 대책 마련을 요구했다. 정부가 실직 상태의 블루칼라가 사회 재진입을 위한 교육과 지원을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사정은 미국보다 열악하다. 정부가 디지털 일자리 만드는 것에 힘쓰는 동안 AI가 저임금·저기술 일자리를 대체한다. 비대면 문화가 확산된 2020년 AI를 적용한 키오스크가 무인 매장을 관리한다. AI 챗봇이 콜센터 업무를 대체한다. 일부 제조 공장에서는 AI가 인건비 줄이기에 나섰다.

올해 AI 도입 속도는 더 가속화된다. 1~2명의 관리·감독 책임자와 AI가 수십, 수백명 만큼의 효율을 내는 실제 사례가 늘어나는 추세다. 그래서 정부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 국민을 위한 사회 안전망은 정부가 존재하는 이유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혁신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다. 디지털 일자리를 통해 고용 한파를 이겨내고, 디지털 강국을 이루겠다는 계획을 추진한다. 하지만 정부는 일자리를 잃은 국민의 사회 재진입을 돕는 등 정책을 펼쳐야 한다. 혁신은 기업에 양보하고, 신기술의 늪에 걸려 뒤에 남겨진 국민은 안고 갈 수 있어야 한다.

송주상 기자 sjs@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