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줄 서평] 홍춘욱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이은주 기자
입력 2021.03.03 06:00
역사를 잘 알수록,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힘도 커집니다.

금융의 역사도 마찬가집니다. 버블 폭락의 역사를 꼼꼼히 복기하면, 오늘날 현재 금융시장의 위기 징조 또한 빠르게 판단할 수 있게 됩니다.

홍춘욱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로크미디어)는 금융 역사의 중요한 순간들을 복기해, 국가가, 그리고 개인 투자자들이 배워야 하는 교훈을 길어올립니다.

예컨대 1929년 발생한 대공황의 원인을 파헤치면서, 불황의 악순환을 막기 위해선 정부의 과단성 있고 선제적인 금리 인하 조치가 필요하다는 교훈을 이야기 합니다.

대공황 당시 미국 중앙은행은 금리를 인상하는 정반대 결정을 내렸습니다. 금본위제 하에서 금의 유출을 우려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는 결국 레버리지를 이용해온 투자자들의 충격으로 이어졌고, 은행의 파산과 대공황으로 이어집니다.

홍춘욱의 ‘50대 사건으로 보는 돈의 역사’ / 로크미디어
4부. 대공황, 아 대공황! 10줄 요약

1.금융시장만큼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곳이 없다. 예금이 풍족한 곳은 더욱 돈이 넘쳐 흐르고, 예금이 부족한 나라는 한없이 돈이 부족해지기 마련이다.

은행에 100억원이라는 목돈이 예치되어 있다면 이를 다양한 곳에 대출해줄 수 있다. 그러나 수백만원 혹은 수천만 원의 돈이 집집마다 쪼개져 있다면 이는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2.모든 참전국은 전쟁 동안 꾸준히 ‘전쟁채권’을 발행하면서 국채를 전혀 사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 ‘국채 구입’이야말로 애국적인 행위라고 설득했다. 반면 연합국은 런던이나 뉴욕 같은 금융 시장이 형성된 곳에서 채권을 발행했다.

3.전쟁 이후 독일이 매년 갚아야 하는 배상금 규모는 국민 소득 10%에 해당했다. 전체 수출액의 80%에 달한 것이다. 신생 독일 정부는 재정적자를 벗어날 길이 없었다.

4.이런 상황에서 독일 정부가 택할 수 있었던 유일한 방법은 ‘통화증발’이었다. 즉 중앙은행이 존재하지 않는데도 중앙은행권을 찍어내고 이 돈을 금으로 바꿔 프랑스 등 전승국에게 지불하는 형태를 취했다. 정부가 보유한 금도 없이 화폐를 발행하고 있단 것을 결국 독일 국민들이 눈치채면서 문제는 발생했다. 마르크화 가치가 폭락하면서 시장에선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하이퍼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예금이나 연금 등 금융자산을 가진 사람은 패자가되고, 실물자산을 가진 사람은 승자가된다. 가장 큰 피해는 고정적 연금 수입을 받아 생활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독일 정부 채권을 구매했던 사람들도 대부분 자산을 잃어버리게 됐다. 반면 토지나 공장 등 실물자산을 가진 사람들은 승자가 됐다.

5.1929년 10월. 미국 증시가 무너진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그 이전 6년 간 주가가 너무 많이 오른 데 있다. 특히 라디오와 자동차 등 신제품 등 수요가 ‘할부 판매’에 의해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실적이 개선되자 주식시장에 불이 붙었다.

6.모든 투자자가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단언하는 시기가 도래하면서 빚을 내 투자 자금을 불려나가는 ‘레버리지 투자’가 빈번해졌다. 부채 덕분에 투자자의 실질적인 투자 수익률이 늘어났다.

7.그러나 초보 투자자 비중이 높아지고 투자 매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시장 금리는 상승했고 주식시장에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기 시작했다. 레버리지 투자로 자산 가치가 악화되면서 금융기관에선 마진콜이 발생했다.

차입금을 상환하지 못할 정도의 주가 폭락을 겪을 때 마진콜이 발생한다. 말 그대로 ‘추가적인 담보 주식이나 현금을 예치하지 않는 한, 강제로 보유주식을 매도해 대출을 회수하겠다’는 통보 전화를 의미한다. 결국 레버리지 투자가 급격히 증가한 상황에서, 주가가 하락하기 시작하면 연쇄적인 악순환이 발생한다

8.주식 시장의 버블이 형성되자 당시 청산주의에 경도됐던 미국 뉴욕 연방준비제도는 금리 인상의 고삐를 좼다. 당시는 금본위제 구조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공격적 금리 인상이 불가피하다는 목소리가 지배적이었다.

금리인하와 통화공급 확대로 미국 증시에 거품이 형성되자 연준 이사회는 상업은행에 대한 자금 공급을 중단하는 한편, 이자율을 인상하기에 이른다. 이는 미국으로의 글로벌 자금 회귀에 영향을 줬고 호주, 아르헨티나 같은 신흥국 경제에 큰 타격을 줬다.

9.금본위제를 기초로 화폐 시스템이 굴러가고 있었기 때문에 중앙은행은 금리 인하를 꺼렸다. 경기 부양을 위해서 금리를 인하하면 역설적으로 미국에서 돈이 유출될 수 있기 때문이었다.

10.당시 미 연준은 은행의 파산을 방치했다. 이때도 명분은 금본위제였다. 연준이 은행들을 돕기 위해 긴급 대출을 해줘서 금리가 떨어지면 외국인들이 몰려와 금을 인출할 수 있다는 우려가 부각된 것이다. 결국 뱅크런 상황이 지속됐고 세계 대공황은 오랜 후유증을 남기게 됐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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