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보호위원회의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이 국내외 산업계의 반발에 부딪쳤다. 과징금 산정 방식에 대한 입장차가 평행선을 달린다. 정부는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책정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산업계는 관련 매출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차례에 걸친 공청회가 열렸지만, 의견 조율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3일 개인정보위와 IT업계 등에 따르면 2월 말 개보법 개정안 과징금 규정 관련해 공청회를 추가로 진행했다. 하지만 공청회 이후에도 업계와 정부의 입장이 평행선을 걷는다.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 설명자료 이미지 / 개인정보위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 설명자료 이미지 / 개인정보위
국내 기업들뿐만 아니라 해외 기업들도 개보법 개정안에 반기를 든다. 과징금 규정 때문이다. 개정안에 따르면 형벌 중심의 제재를 경제벌 중심으로 전환한다. 해당 조항에는 경제적 제재 수단인 과징금의 부과 기준을 위반행위 관련 매출액에서 전체 매출액의 3%이하로 상향한다.

미국 IT기업들은 주한 미국상공회의소(암참)를 통해 개정안에 우려를 표하는 의견을 정부에 전달했다.

미국에 본사를 둔 IT기업 한 관계자는 "개정안 일부 규정에 대해 기업들이 강력하게 반발하는 의견을 제출했다"며 "‘한국 정부 해도해도 너무하다'는 식의 내용이 담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 한 관계자도 "대부분의 기업이 과징금 규정에 대한 우려가 크다"며 "개인정보 보호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존중하지만, 개정안과 관련한 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합리적인 개선점을 찾길 바라는 입장문을 제출했다"고 말했다.

최근 구글 갑질 방지법이 통상압박을 받은 것과 비슷한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구글 인앱결제 수수료 강제를 방지하기 위한 법안은 국회에서 계류 중이다. 구글코리아 측은 한미간 통상마찰에 대한 우려를 전달하며 법안 처리 재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무역대표부(USTR)도 구글 갑질 방지법안에 반발하는 의견을 우리 정부에 전했다. 앞서 우리 정부는 국내 클라우드컴퓨팅산업 활성화를 위한 특별법을 추진할 때는 주한미국상공회의소를 통해 통상압박을 받은 바 있다.

업계 "사기죄에 사형을 구형하는 꼴" vs 개인정보위 "과도한 우려다"

개인정보를 활용하는 국내 기업들은 과도한 규제라며 강력하게 여전히 강력히 반대한다. 2월 8일 열린 공청회에서도 기업들의 목소리는 ‘과징금 규제'에 쏠렸다.

개인정보위는 업계의 반발이 거세자 2월 말 과징금 규정과 관련해 추가 공청회를 열었다. 하지만 논의는 제자리걸음 중이다.

국내 IT업계 한 관계자는 "다양한 협회나 단체 관계자를 불러 공청회를 추가로 진행했지만, 업계의 의견이 반영될 것이란 느낌은 받지 못했다"며 "정부도 향후 시행령을 통해 구체적인 내용을 조율할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굽힐 생각이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이어 "EU 등 다른 나라와 동일한 법 체계를 우리나라에 적용하는 것이 맞는 지도 모르겠고, 설령 그렇다하더라도 과징금 수준을 상향한 이후에 개인정보보호에 도움이 됐다는 영향평가가 명확하지 않다면 데이터 수집자체를 위축하는 부작용만 생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개인정보 침해를 막기위해 전체 매출액 기준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것은 사기죄를 막기 위해 최고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규정한 것과 마찬가지다"며 "성급한 규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일관된다. 담합행위와 달리 개인정보 위반 발생 매출은 산정이 곤란하고, 과징금 부과에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보니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또 반복적이고 의도적으로 침해한 기업에 한해서 전체 매출액의 3%를 부과하는 것이기 때문에 일반 기업들이 과징금을 계속 걱정하는 것은 마치 반복적으로 개인정보를 침해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치는 것과 마찬가지다고 맞받아쳤다. 예측하지 못했던 기술적인 사고에 대해서는 과징금 부과 아닌 시정조치를 요구할 것이며, 시행령 개정 과정에서 기업들의 우려사항을 충분히 반영하겠다

개인정보위 관계자는 "암참이 EU에도 항의를 했는지 모르겠지만, 유럽, 호주 중국 등이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는 데 우리나라만 완화하는 것도 맞지 않다"며 "형벌 중심을 경제벌 중심으로 바꿨고, 비례의 원칙을 어기지 않겠다는 내용도 추가하는 등 업계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하는데 업계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강행한다는 주장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업계의 주장은 의도적으로 잔인하게 살인했을 경우 무기징역에 처할 수 있다는 형벌조항을, 과실로 사람을 죽였을 경우가 있으니 단순한 벌금형으로 완화해달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주장했다.

류은주 기자 riswell@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