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와 아우디, 폭스바겐, GM, 포드 최근엔 테슬라까지. 이들 글로벌 완성차 기업의 공통점은, 올들어 자사 생산라인 가동을 일시 중단 또는 감산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 역시 같다. 바로 차량에 들어갈 반도체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최근엔 이같은 차량용 시스템반도체 공급 대란이 메모리칩 분야로 확대되면서, 서버용 D램 가격마저 대폭 오르는 등 반도체 전반의 품귀 현상으로, 연초부터 글로벌 산업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그럼 반도체 기업들이 빨리 증산이나 신규 출시를 하면 되잖냐 싶지만, 그게 말처럼 쉽잖은 게 칩 마켓의 특성이다. 반도체는 대규모 장치산업이다. 몸이 무겁다. 주문이 밀려든다 해도, 늘어난 수요에 맞춰 공급이 이뤄지기까지 길게는 1년 이상 걸린다. 예컨대, 차량용 칩의 경우, 후발주자로 뛰어들면 제품기획과 연구개발, 양산 등에 엄청난 시간과 비용을 투입해야 한다. 어렵게 개발을 완료한다 해도, AEC-Q100 등 각종 인증 획득에 또 다시 6개월 이상 소요된다. 자칫 타이밍을 놓치면, 오히려 과잉공급 사태를 맞을 수 있다.

그래서 최근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M&A 광풍이 불고 있다. 라인 증설이나 제품개발 없이도, 피인수 업체를 통해 원하는 제품과 시장을 일거에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 M&A의 시작과 끝에 바로 ‘특허’가 있다.

반도체 M&A, 대량특허 일거매집

지난해 글로벌 반도체 업계의 M&A 규모는 약 600억 달러에 달했다. 이는 최근 3년간 연평균 M&A 규모의 2배가 넘는 수준이다. 올들어서도 정초부터 불꽃 튀는 인수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퀄컴은 미국의 반도체 스타트업 누비아를 14억 달러에 인수키로 했다. 지난달엔 일본 반도체 회사 르네사스가 영국 칩업체 다이얼로그 인수를 발표했다. 인수 가격만 우리돈 6조6000억원이다.

 최근 주요 글로벌 반도체기업 M&A 사례  / 영국 IAM
최근 주요 글로벌 반도체기업 M&A 사례 / 영국 IAM
IP빅데이터 분석을 통해, 모두 26개 글로벌 반도체기업 보유 특허를 전수 조사했다. 총 2만5000여건의 특허가 이들 M&A와 연관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통 M&A시 인수기업 보유특허수를 보면, 피인수 기업 대비 10배 가량 많다. 상대적으로 큰 기업이 작은 업체를 먹는 식이다. 예컨대, 지난해 인파이를 100억 달러에 합병한다고 밝힌 마벨의 경우, 보유 특허수가 총 8800건으로, 860건인 인파이 대비 10배 이상 많았다.

하지만 반도체 분야 M&A에선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AMD가 인수하는 자이링스나, 엔비디아가 합병하는 ARM은 각각 4500건과 4200건의 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합병이 최종 완료되면, 각 인수기업 IP포트폴리오의 절반 이상이 이들 피인수 기업의 특허로 재구성되는 셈이다. 심지어, 오스트리아 센서업체 AMS(604건)가 46억 유로를 주고 인수하는 독일 오스람(5423건)의 경우, 인수기업보다 9배 가량 많은 특허를 갖고 있다. 반도체 M&A의 주목적중 하나가, 바로 다량의 특허를 일시에 확보하는데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대목이다.

M&A통한 전문화·집중화

각 인수·피인수 업체별 IP포트폴리오를 분석해보면, 해당 M&A가 추구하는 기술적 지향점을 엿볼 수 있다. AMD는 특허기술분류 방식인 CPC 코드상 G06F, 즉 ‘디지털 데이터 프로세싱’ 분야에 가장 많은 특허를 갖고 있다. 그런데, 이 AMD가 인수·합병을 추진중인 자이링스 역시, 보유 특허의 대부분을 AMD와 같은 G06F 분야에 구축해놓고 있다.

엔비디아(인수)-ARM(피인수) 커플도 이 G06F에 IP포트폴리오가 똑같이 집중돼 있다. 이밖에 ‘AMS-오스람’은 H01L(반도체 장치), ‘마벨-인파이’는 H04L(디지털 정보 전송) 분야에 나란히 화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같은 기술적 짝짓기 구도로 봐, 글로벌 반도체 M&A 시장의 최신 트렌드는 전선의 확대가 아닌, 기존의 자사 기술영역에 대한 전문화와 집중화에 철저히 맞춰져 있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인수팀 라인업의 변화

기업 M&A의 시작과 끝은 인수대상 기업에 대한 정확한 가치평가다. 그런데 요즘 M&A시장에 매물로 나오는 업체, 특히 반도체와 같은 테크 기업의 실질적 내재 가치는 사옥이나 공장과 같은 유형자산이 아닌, 특허나 상표권 등 대부분 무형자산에 있다. 따라서 IP실사팀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해졌다. 이들은 피인수기업 보유 IP중 △분쟁에 휘말린 건은 없는지 △곧 만기가 도래되는 등록특허는 어떤 것들인지 △주요 IP별 라이선스 계약 관계나 조건은 어떻게 되는지 △그에 따라 어떤 특허는 버리고 △또 어떤 IP는 유지할 것인지 등을 종합 판단해 최종의사결정권자에게 리포트해야 한다. 요즘 빅테크기업 M&A의 실질적 산파역은 기존 변호사나 회계사들이 아닌, IP전문가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다.

M&A 시장의 최종병기, 특허

엔진이나 모터, 배터리가 아닌, 이 손톱만한 칩 하나가 없어 거대한 자동차 라인이 일제히 멈춰서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진입해있다. 앞으로 이같은 일은 반도체나 자동차 뿐만 아니라, 전산업 영역에 걸쳐 일어날 개연성이 높다. 그럴수록 기술 기반 테크 컴퍼니를 상대로 한, 글로벌 M&A 빅마켓은 더욱 성황을 이룰 것이다. 이에 대한 대비책, 바로 특허에서 찾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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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경동 IP컬럼니스트

윕스 전문위원과 지식재산 전문매체 IP노믹스 초대 편집장, 전자신문 기자 등을 역임했습니다. EBS 비즈니스 리뷰(EBR)와 SERICEO에서 ‘특허로 보는 미래’를 진행중입니다. IP정보검색사와 IP정보분석사 자격을 취득했습니다. 저서로는 △특허토커 △글로벌 AI특허 동향 △특허로 본 미래기술, 미래산업 등이 있습니다. 글로벌 특허전문 저널 英 IAM 선정 ‘세계 IP전략가 300인’(IAM Strategy 300:The World’s Leading IP Strategists)에 꼽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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