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무너지는 조립PC 시장

최용석 기자
입력 2021.03.18 06:00
모처럼 PC 시장이 호기를 맞았지만, 조립PC 시장 분위기는 심상치 않다. 가상자산 가치가 폭등하고, 암호화폐 채굴 열풍으로 그래픽카드 가격이 폭등하면서 조립PC를 찾는 소비자 발걸음이 오히려 감소했기 때문이다.

지난해 9월 지포스 30시리즈 그래픽카드가 처음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래픽카드 가격 상승의 원인은 수요보다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시장 논리에 따라 가격이 오른 것인 만큼, 소비자들은 가격표에 불만이 있을지언정 그 ‘이유’에 대한 불만은 그리 크지 않았다.

하지만 수개월이 흐른 지금은 사정이 달라졌다. 코인 열풍을 등에 업은 ‘채굴장’ 세력이 그래픽카드의 ‘시세’를 대폭 끌어올렸다. 채굴장은 보유한 그래픽카드가 많으면 많을수록 시간당 더 많은 코인을 채굴할 수 있다. 당장 이익이 남는다면 웃돈을 더 주고서라도 그래픽카드를 하나라도 더 확보하려 든다.

문제는 그 ‘웃돈’이 고작 수만 원 수준이 아니란 데 있다. ‘지포스 RTX 3080’을 예로 들면, 지난해 말 초기 출시 당시 평균 가격이 100만원 안팎 하던 것이 2021년 3월 중순 현재 200%를 넘어선 230만원 안팎을 오간다. 중국산 제품에 대한 미국의 추가 관세, 글로벌 물류비용 상승, 반도체 수요 급증으로 인한 제조 원가 상승 등을 더해도 정상적인 가격 상승분은 20만원~30만원 선에 불과하다. 즉 3080 제품 기준으로 약 100만원 정도의 비용이 웃돈으로 붙은 ‘거품’인 셈이다.

채굴 성능이 좋은 것으로 소문난 지포스 30시리즈는 현재 판매 가격이 초기 출시가보다 2배 이상 올랐다. / 엔비디아 유튜브 갈무리
물론, 유통사 입장에서 ‘구매자’가 스스로 더 돈을 주고 산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지금의 가격표도 ‘구매자’가 낼 수 있는 최대 금액에 맞춰 판매자들이 써 붙인 것이다. 법적으로도 막을 근거도 없다. 현재 그래픽카드를 비롯해 PC를 구성하는 거의 모든 부품이 권장 소비자 가격이 아닌 오픈 프라이스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픽카드 수입사들도 이러한 부조리한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갖은 아이디어를 동원하고 있지만, 효과는 거의 없다. 종종 소량의 물건을 원가 수준의 가격으로 오픈마켓을 통해 직접 판매하거나, 추첨을 통해 판매하기도 하지만 언 발에 오줌 누기 수준이다. 오히려 사전 정보를 받은 채굴업자는 물론, 본격적으로 시세 차익을 노리는 ‘리셀러’까지 몰려들면서 정작 필요한 실수요자들의 구매 가능성은 오히려 줄어드는 상황이다.

결국, 두 배 넘게 오른 그래픽카드 가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일반 소비자들은 되려 조립PC를 포기하고 있다. 원하는 그래픽카드가 포함된 브랜드 PC 업체의 완제품PC나 노트북 등 완성품을 사는 쪽이 ‘가격 대비 성능’ 면에서 훨씬 낫기 때문이다.

채굴장이나 리셀러들은 일종의 투기 세력이다. 지금은 이익이 되니까 비싼 가격에도 그래픽카드를 사들이고 있지만, 손해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언제든 손을 털고 떨어져 나갈 뜨내기다. 그제야 그래픽카드 가격을 원래 수준으로 되돌려도 일반 소비자들이 다시 조립PC 시장으로 돌아올 것이란 보장은 없다. 이미 소비자들의 뇌리에는 ‘(그래픽카드로 인해) 조립PC가 더 비싸다’라는 인식이 박힌 상태이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조립PC 시장은 더욱 위축될 수밖에 없다.

그래픽카드 수입·유통사들이 국내 조립PC 시장의 존속을 바란다면, 일반 소비자들의 이탈을 막을 수 있는 더욱 효과적인 방법을 강구하고 실천해야 한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오픈마켓 직판 물량을 대량으로 늘려 조금이라도 일반 소비자들이 제 가격에 살 기회를 더 만들어야 한다. 물론, 채굴장과 리셀러들도 몰려들겠지만, 늘어난 물량만큼 힘든 경쟁을 뚫고 구매할 수 있는 일반 소비자의 수도 그만큼 늘어난다. 소비자들에게 ‘아직 구매할 수 있다’라는 믿음을 주고 붙잡아야 한다.

코로나19의 백신 접종이 시작됐지만, 재택근무가이 자리를 잡으면서 한 번 살아난 PC 수요는 앞으로도 한동안 계속된다. 하지만, 그래픽카드 유통사들이 일반 소비자를 포기하고 지금처럼 채굴장, 리셀러에 맞춘 상태를 이어갈수록 국내 조립PC 미래는 더욱 불투명해 보인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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