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만난 중견기업을 경영하는 친구는 월급날이 다가오면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나 싶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신경쇠약까지 생겨 스스로 생을 마감하고 싶은 충동이 들 때도 있다는 것이다. 사업을 접으려 해도 청산이 쉽지도 않고 자신을 믿고 같이 일해 온 종업원들을 생각하면 그럴 수도 없단다.

기업을 경영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우선 창업 목적에 맞게 기업을 경영하면서 흑자를 내든지 투자자들에게 미래의 가치를 인정 받아야 지속할 수 있다. 종업원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한 역할이다. 각종 세금을 부담하고 더 나아가 최근에는 사회적인 책임을 요구 받고 있다.

이 뿐 아니라 한국의 경영자들은 엄청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 것도 산업재해, 고용안정 등 노동존중을 앞세운 법에 의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이 경제관련 법령 285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형사처벌 항목이 무려 2657개에 달한다. 이 중 기업과 기업인을 동시에 처벌하는 양벌 규정이 2205개(83%), 징역 또는 벌금형이 2288개(86%) 처벌 수위도 높다. 2019년 자료이니 더 늘어났을 것이다.

20년 전과 비교하면 형사처벌 항목 수는 42% 증가했으며, 양형도 징역 3년(8.3%) 벌금 5230만원(48.3%)으로 증가했다. 이러니 기업경영인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우스개 소리를 하는 것이다.

기업을 경영하며 사회적, 법적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해도 너무하다. 기업과 관련한 사회적 이슈만 등장하면 국회에서는 전후 사정을 종합적으로 판단하는 게 아니라 법을 하나 만들어 처벌 규정을 계속 늘려가고 있다. 종업원뿐 아니라 하청기업의 활동 하나하나에 대해 2000개도 넘는 처벌 규정을 관리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가히 기업경영자에게 적대적 분노에 찬 사회라 할 정도이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에서 CEO는 패가망신하기 딱 좋은 직종이다.
삼성을 창업한 이병철 회장은 일신의 안락과 축제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에 필요한 것을 파악하여 하나 하나 새로운 기업을 단계적으로 일으켜 갈 때, 더 없는 창조의 기쁨을 맛본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의 흥분과 긴장과 보람 그리고 가끔 겪는 좌절감은 기업을 해 본 사람 만이 알 수 있다고도 했다. 기업을 통한 보국을 강조한 것이다.

이병철 회장이 현재의 기업 환경에서도 같은 목소리를 냈을지 궁금하다. 기업 승계를 위해 고초를 겪고 있는 손자를 향해 경영에서 손 떼고 편히 살라고 하지는 않았을지. 이재용 부회장은 자녀에게 기업승계를 하지 않겠다는 선언을 했다.

사회가 요구하는 부정적 기업승계를 단절하는 약속이다. 그러나 액면 그대로 만 들리지 않는다. 상속세를 부담하며 기업 승계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깔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자녀는 고초를 겪지 않고 살기를 원하는 아비의 심정도 엿보인다.

이병철 회장의 말을 빌리지 않더라도 수많은 기업가, 자산가들은 기업을 창업하고 사업을 확장하는 투자에 나서지 않으면 개인적으로는 일신상의 안락을 누릴 수 있다. 기업가정신이 사라지면 그 피해는 온전히 국민에게 돌아 온다. 우선 기업 자체의 부, 세금을 통한 정부의 부, 종업원들이 노동의 대가로 쌓아가는 부 등 국가의 부를 축적하는 길이 줄어든다. 국가가 기업활동에 직접 나서는 것이 비효율적이라는 것은 이미 역사가 말해 주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국가를 떠 받치는 핵은 기업이다. 기업가들을 위축시키는 법과 규제를 철폐시켜야 한다. 기업가를 처벌의 대상이 아니라 국가의 발전을 위해 전면에 나서 위험을 감수하는 전사로 여겨야 한다. 기업가의 직접적인 책임이 아닌 경우에는 기업가에게 적용하는 양벌규정을 최대한 제거시켜야 한다.

기업의 투자와 고용을 위축시키는 정책 기조를 바꿔야 한다. 기업이 물러난 자리를 정부가 메우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아울러 기업가가 존중 받으며 뛰는 국가가 되기 위해 기업가도 바뀌어야 하지만 정치권을 비롯해 우리 사회의 기업가에 대한 적대적인 증오를 거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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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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