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표준계약서를 둘러싸고 작가와 출판계, 문화체육관광부(문체부) 사이의 갈등이 좀처럼 좁혀지지 않는다.

작가들은 출판계가 자체적으로 만든 표준계약서가 ‘불공정'하다며, 문체부의 표준계약서를 환영한다. 반면, 출판계는 문체부의 표준계약서가 출판사의 권리를 보호하지 않고 있다고 보며 인권위에 진정서까지 제출했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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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 표준계약서 발표, 작가 "노예계약이다"

앞서 출판계는 문체부에 한발 앞선 1월 출판 표준계약서를 발표했다.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등 주요 출판 단체의 의견을 수렴해 만들었다. 출판계가 내놓은 표준계약서에는 ‘출판권 및 배타적 발행권' 계약기간을 ‘10년’으로 정한 내용이 포함됐다.

출판권은 저작물을 종이책으로 인쇄할 수 있는 권리다. 배타적 발행권은 전자책, 오디오북 등 형식으로 만드는 권리다. 출판업계는 출판사들이 안정적으로 출판물에 투자하기 위해서 상당 기간이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출협 관계자는 "출판물을 전자책, 구독형 서비스 등 관련 사업으로 다시 낼 수 있도록 하는 권리라고 이해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작가들은 출판계의 표준계약서에 비판적인 입장을 잇따라 내놨다. 출판계가 만든 ‘노예 계약'이라고 지적했다. 2차 저작권을 출판사에 위임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겨 있을 뿐 아니라, 출판사의 출판권 및 배타적 발행권 계약기간이 지나치게 길다고 지적했다.

한국작가회의,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어린이청소년책 작가연대 등 작가 단체들을 성명을 내서 "기존에 통용됐던 5년이라는 저작권 존속기간을 10년으로 되레 늘렸다. 노예계약이다"고 반발했다.

문체부, 저작권자 위주 출판 표준계약서 내놓자 출협 "활동 방해"

이 상황에서 2월 문체부가 출판 표준계약서를 고시했다. 문체부는 계약기간을 공란으로 뒀다. 저작권자와 출판사가 합의하에 계약 기간을 정하도록 한 것이다. 또 2차 저작물에 대한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주는 내용도 포함했다.

문체부는 표준계약서 사용 확산을 위해, 해당 계약서 사용이 필요한 정부 사업 분야를 넓혔다. 기존에는 ‘우수 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요건으로만 정부의 표준계약서 사용을 명시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출판콘텐츠 창작 자금 지원'과 ‘우수콘텐츠 전자책 제작 활성화', ‘오디오북 제작 지원’등 3개 제작지원 사업에 정부의 표준계약서를 내야 한다.

정부의 주요 출판 지원 사업들을 받으려면 2차 저작권을 작가에게 위임하고, 저작권 존속기간은 합의를 통해 정하는 계약을 체결하도록 한 것이다.

작가들은 문체부가 내놓은 출판 표준계약서에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작가는 "문체부가 고시한대로 계약을 체결하게 될 때, 2차 저작권의 주체가 작가에게 있게 되어 공정한 수익 정산이 가능해진다"고 말했다.

반면, 출판계는 문체부의 출판 표준계약서에 크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사실상 문체부의 표준계약서를 사용해야만 정부 지원 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어 "강제성이 있다"고 불만을 말한다.

현재 출판계는 메이저 출판사로 분류되는 10여개 출판사 외에는 대부분 적은 수익을 내는 구조다. 그렇기에 문체부의 출판 표준계약서는 지원금을 받아야 할 정도로 어려운 환경에 놓인 출판사에게는 큰 압박이 된다고 반발한다.

출협 "지원사업에 문체부 계약서 강제는 위법 여지", 작가 "피해 막을 유효한 대안"

이에 출협은 19일 국가인권위원회에 문체부 출판 표준계약서 제정 고시, 강제 사용이 위법하다는 내용의 진정서까지 제출했다. 출협은 "문체부와 출판진흥원의 출판 표준계약서 제정은 사실상의 사용 강제다. 자유로운 출판 활동을 사실상 방해하는 것으로 판단한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이의 중단 및 폐지를 권고해줄 것을 진정했다"고 전했다.

염상섭 출협 관계자는 "사실 출판 표준계약서는 문체부 것이든 출판계의 것이든 수정해서 쓸 수 있는 가이드라인일 뿐이다. 그런데 문체부가 표준계약서를 그대로 따르지 않는다면 지원 사업에서 배제한다고 고시한 것은 위법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반면 익명을 요구한 한 작가는 "작가들이 출판 등 저작권 문제에 눈이 어두운 사이에, 저작권 관련해 피해를 입은 경우가 상당하다. 문체부의 출판 표준계약서를 정부 지원 사업 등에서 널리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