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이노베이션이 LG에너지솔루션과 배터리 분쟁에서 한치도 물러서지 않으며 기싸움을 벌인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의 수입금지 결정에 대해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되지 않을 경우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철수 가능성도 시사한다. LG가 요구하는 수조원의 배상액을 지불하느니 미국 배터리 시장을 포기하겠다고 배수진을 쳤다.

미국 배터리 시장 포기는 SK에 수조원 이상의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미국 내에서 포드와 폭스바겐 등 고객을 잃는 것은 물론, 다른 글로벌 시장에도 영향이 가게 된다.

하지만 SK가 솟아날 구멍이 없는 것은 아니다. 중국과 유럽에서 시장 영향력을 확대해 이를 만회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 모습 / SK이노베이션
배터리 교체 스테이션 모습 / SK이노베이션
30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SK는 10년간 미국 내 배터리 제품 수입금지를 결정한 ITC의 구제명령(remedial orders)을 유예해달라고 최근 ITC에 청원했다. 포드와 폭스바겐에 각각 내린 4년, 2년 간의 유예 조치로는 조지아 공장 건설을 계속할 수 없다는 계산이다.

SK는 이 청원에서 "위원회의 이번 구제명령은 재앙적이며 SK뿐 아니라 미국의 공익에도 장기적으로 해가 될 것이다"라며 "이는 결국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포기로 이끌 것이고, 수천 개의 일자리와 환경적 가치가 사라져 버릴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SK는 미국 배터리 사업이 좌초될 위기에도 중국·유럽 시장에 잇따른 투자를 진행하며 위험을 분산 중이다. SK이노베이션은 1월 북경자동차 산하 배터리 재사용 기업 ‘블루파크스마트에너지(이하 BPSE)’의 지분 13.3%를 취득했다. BPSE 주요 전략적 투자자 지위를 확보해 중국에서 배터리 교체 사업 진출의 교두보를 마련한 셈이다. BaaS는 배터리 렌탈, 충전, 재사용, 재활용 등 전기차 배터리를 기반으로 한 서비스 산업이다.

최근 시장조사업체 마켓앤마켓은 2025년 글로벌 리튬이온배터리 재활용 시장이 122억달러(14조5000억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봤다.

배터리 재활용 산업을 선도하는 곳은 중국이다. 29일 한국자동차연구원이 발간한 ‘중국의 배터리 교환형 전기차와 그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니오, 상하이기차, 베이징기차 등 주요 완성차 기업들은 배터리 교환형 전기차 사업화를 추진 중이다.

특히 중국에서 많이 사용되는 LFP 배터리는 가격이 저렴한 대신 재활용이 어렵다. SK의 NCM 배터리의 경우 재활용 기술이 상용화 단계까지 올라왔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이같은 사업 모델을 시도하는 배경과 전략을 눈여겨 볼 가치가 있다고 본다. SK의 한발 앞선 투자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거듭날 가능성도 있다.

이호중 한국자동차연구원 책임연구원은 "중국이 충전 인프라가 미비한 국가에 전기차와 배터리 교환형 사업 모델을 패키지로 수출해 시장을 선점하고 경쟁국에 대한 진입장벽을 세울 수 있다"며 "일부 개발도상국에 중국의 배터리 교환 시스템이 표준으로 자리 잡으면 소비자는 그 서비스에 고착돼 배터리 호환성이 없는 전기차를 외면할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SKIET 폴란드 LiBS 1공장 건설 현장 / SK이노베이션
SKIET 폴란드 LiBS 1공장 건설 현장 / SK이노베이션
SK는 최근 유럽에서 배터리 소재 시장 선점을 위해 분리막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했다. 장소는 기존 공장이 있는 폴란드다. 유럽에서 배터리 소재 분야 영향력을 강화해 배터리 분야에서도 시장 지위를 끌어올리겠다는 전략적 판단이다.

SK이노베이션은 26일 이사회에서 소재 사업 자회사 SK아이이테크놀로지(SKIET)가 폴란드 실롱스크주에 분리막 3·4공장을 건설하는데 1조1300억원을 투자하기로 결의했다. SKIET의 단일 투자액 중 역대 최대 규모다.

분리막은 리튬이온 배터리의 안전성과 성능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필수 소재다. 배터리 원가의 15~20%를 차지한다. SKIET이 생산하는 습식 분리막은 건식 분리막보다 품질이 뛰어나 대용량의 전기차용 배터리를 제조하는 회사들이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습식 분리막 시장에서 국내 업체는 SKIET, 일본 업체는 아사히카세이·도레이, 스미토모 등이 글로벌 톱 티어로 경쟁을 펼친다. SKIET는 폴란드 공장 증설로 글로벌 습식 분리막 시장에서 독보적 1위에 올라서겠다는 목표다.

SKIET는 2023년 말 분리막 3·4공장 양산에 돌입한다. 연간 생산능력 8억6000만㎡에 달하는 3·4공장이 완공되면 기존 1·2공장의 6억8000만㎡ 생산능력과 합산해 폴란드에서만 연간 총 15억4000만㎡(대용량 전기차 기준 154만대분) 분리막 생산이 가능하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분리막의 균일한 품질을 구현하는 축차연신 기술, 변형을 최소화하는 코팅 기술 등 SKIET 분리막을 적용한 배터리는 지금까지 단 한 건의 화재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며 "전기차 배터리 시장 급성장으로 수요가 증가하고 있어 선제 대응을 위해 대대적 투자를 단행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