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학 교수와 변호사 등 외부 전문가들이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추진하는 개정안의 법안 수정을 촉구했다. 개정안에서 개인정보 침해 시 연 매출 3%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기준이 법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다. 또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문제로 삼았다.

 ‘법학자들에게 묻고, 듣다.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의 과징금 규정이 합헌적인가, 바람직한가?’ 세미나 현장 /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네이버TV 갈무리
‘법학자들에게 묻고, 듣다.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의 과징금 규정이 합헌적인가, 바람직한가?’ 세미나 현장 / 한국인터넷기업협회 네이버TV 갈무리
김민호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6일 체감규제포럼이 주최한 ‘법학자들에게 묻고, 듣다. 개인정보 보호법 개정안의 과징금 규정이 합헌적인가, 바람직한가?’ 세미나에서 개보위의 과징금 부과 조항이 법 원칙 위배가 명확하며 수정 발의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는 전체 매출액 기준이 법 원칙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개보위는 개정안에서 개인정보 침해 행위가 발생할 경우 전체 매출액의 3% 이하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키로 했다. 법 위반 행위와 관련된 매출액의 3% 이하까지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던 규정을 상향한 것이다.

김 교수는 "과징금 부과는 행정법상 의무위반 행위와 경제적 이익 사이에 직접 관련성이 있어야 한다"며 "개인정보보호법 개정안의 과징금 규정은 전체 매출액이 아닌 관련 매출액을 기준으로 수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토론회 참석자들은 위반 행위에 비례하지 않은 과징금은 과잉금지원칙에 의해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았다.

홍대식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매출 1조 기업과 매출 100억원인 기업이 똑같은 위반 행위를 했다고 가정할 때 같은 행위에 대해 매출이 큰 기업이 더 많은 금액을 내게 되는 셈이다"며 "이는 행정법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인호 중앙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형사 처벌 영역에서도 책임 원칙이라고 해서 지은 죄와 벌은 비례 관계가 있어야 한다"며 "과징금이 위반 행위에 비례하지 않게 과도하면 과잉금지원칙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개보위가 과징금 부과 조항에 넣은 ‘위반행위와 상응하는 비례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문구도 적절치 않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개보위가 산업계 반발에 이같은 내용을 절충안으로 내놨지만 이는 비난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자구책에 불과하다고 봤다.

김민호 교수는 "위반행위와 상응하는 비례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문구는 언뜻 보기에 관련 매출액을 의미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기존 ‘관련 매출액’ 기준이 아닌 어려운 문구를 사용한 것이다"라며 "고려한다는 것 자체가 규제 칼자루를 행정당국이 쥐고 있다는 것이며 기업 입장에선 예측할 수 없기에 대응 비용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명확하고 엄격한 원칙이 필요하다"고 했다.

개정안이 산업에 미칠 영향에도 우려를 제기했다. 인터넷 기업뿐 아니라 제조, 유통 등 산업계 전반에 타격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삼성전자의 데이터 관련 사업은 전체 사업의 일부에 해당하지만 개인정보보호법을 위반할 경우 스마트폰, 가전 등 전체 매출을 기준으로 과징금을 물게 된다.

이상직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개정안은 데이터 사업 진출을 고려하는 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쳐 산업 위축을 가져올 수 있다"며 "스타트업이나 중견 기업은 사업을 접게 될 수 있다는 부담이 생길 것이고 또 대기업은 과징금 부담을 줄이기 위해 회사를 분할하는 식으로 편법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다. 이게 과연 바람직할 지 의문이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개보위가 유럽연합 등 해외 주요국 사례를 쫓을 게 아니라 한국 현실을 고려해 합리적인 기준을 세워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유럽 GDPR이 전체 매출액을 기준으로 하는 과징금 규정이 있지만 집행 체계가 다르다는 지적이다.

이인호 교수는 "유럽 GDPR은 과징금 산정을 위해 위반 행위의 중대성 등 11가지 고려 요소를 설정하고 있다"며 "또 유럽연합의 경우 이중처벌을 제한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이를 도입하고 집행할 때 신중해야 한다"고 했다.

장미 기자 mem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