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툰·웹소설 업계가 공모전을 활발히 열고 있다. 역량있는 신인 작가를 발굴해 지식재산권(IP)을 선점하려는 ‘IP비즈니스’의 일환이다. 하지만, 카카오페이지 등 주요 플랫폼의 공모전 요강을 보면 ‘작가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공정 사항’이 눈에 띈다. 법적인 규제 수단이 미비한 가운데, 힘의 우위를 활용해 불공정한 공모전을 진행해왔다는 비판이 나온다.

4회 추미스 공모전 내용 일부 / 추미스 공모전 화면 갈무리
4회 추미스 공모전 내용 일부 / 추미스 공모전 화면 갈무리
문화체육관광부는 2014년과 2019년 창작물 등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한 공모전 가이드라인을 공표했다. 가이드라인에는 ‘주최측이 수상작의 저작재산권을 일방적으로 가져간다고 사전에 결정해 고지할 수 없다’는 내용이 담겼다. 주최측이 수상작의 저작재산권 일부를 취득하려면, 발표 이후 해당 응모자와 별도 합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는 내용도 담겼다.

2014년 공정거래위원회도 공모전에서 지식재산권이 주관기관에 귀속된다고 귀속하도록 한 공모전 약관 등이 부당하다면서 시정 명령을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웹소설, 웹툰 관련 공모전에서 작가들의 저작권을 침해하는 불공정 관행이 지속되어 온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형 플랫폼인 카카오페이지가 주최한 공모전에서는 주최 측이 작가의 2차적 저작물을 가져간다는 내용이 보란듯 공지에 포함됐다.

문체부가 작성한 공모전 저작권 관련 가이드라인 일부 / 문체부
문체부가 작성한 공모전 저작권 관련 가이드라인 일부 / 문체부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원작품을 드라마, 영상, 영화 등으로 제작할 수 있는 권리다. 이 권리를 작가가 아닌 공모전 주최자가 가져가게 되면 작가들은 자신의 작품을 기반으로 한 2차 저작물이 흥행해도 수익을 충분히 배분받기 어려워지는 경우가 생길 수 있다. ‘구름빵 사건’이 대표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2차적 저작물에 대해서는 사업자가 ‘2차저작권’을 가져가는 방식이 아니라, ‘2차저작권’에 대해 사업자에게 ‘이용허락’을 해주는 형태의 계약을 체결해야 공정한 수익 배분이 이뤄질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카카오페이지가 주최한 공모전을 보면, 주최자가 일방적으로 2차저작권 저작물 작성권을 갖는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2020년 CJ ENM 등과 함께 개최한 ‘추비스 공모전’이 대표적이다. 추미스 공모전은 2016년부터 개최됐으며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요소를 갖춘 복합 장르물 공모전이다.

2020년 공모전 요강에는 "수상작에 대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카카오페이지에 있다. 2차 사업 예시는 영상, 공연, 만화, 게임, 해외번역수출, 캐릭터상품 등이다"고 실려 있다.

앞서 2019년 진행된 3회 추미스 공모전에서는 "모든 수상작은 (계약이) 카카오페이지, CJ ENM과 삼자 계약을 기본으로 하며 소설화 혹은 영상화 등 2차저작물 진행방식에 따라 각각 카카오페이지 혹은 CJ ENM과 직접 계약을 진행하게 된다"고 명시되어 있다. 2회 추미스 공모전에서는 "수상작에 한해 2차 저작물 작성권(영상화 제외)에 대한 판매 중개 권리는 카카오페이지에 있다"고 표시되어 있다.

창비-카카오페이지가 진행중인 ‘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공모전’ 권리 의무 안내 일부 / 창비
창비-카카오페이지가 진행중인 ‘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공모전’ 권리 의무 안내 일부 / 창비
카카오페이지가 창비와 함께 2월 진행한 ‘창비 영어덜트 장르문학상’ 공모전에서도 비슷한 문구가 등장한다. 공모전의 모집 권리 의무 안내를 보면 "본 공모는 창비와 카카오페이지가 공동주최하는 공모로 응모작 전체에 대해 아래의 조건이 적용되며 작품 제출 시 아래 응모 조건에 동의한 것으로 간주된다"며 "수상 작가는 2차적 저작물 작성권 등에 대해 계약을 진행한다. 수상작의 2차 저작물 작성권에 대한 처리를 창비에 위임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변호사들은 이처럼 수상작의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을 주최자가 가져간다는 내용이 ‘공모전 약관 시정 조치’ 위반과 ‘불공정 약관’에 해당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은다. 공모전은 주최 측과 응모자 사이의 민법상 계약의 일종으로 볼 수 있는데, 공고와 모집 요강 등이 계약 내 ‘약관’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아서다.

서유경 법률사무소 아티스 변호사는 "우리 저작권법은 특약이 없는 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은 쉽게 양도되지 않도록 보호한다. 콘텐츠의 원작에서 속편, 스핀오프, 다른 장르 콘텐츠를 만들 때 무궁무진한 경제적, 문화적 가치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공모전에서 2차적 저작물 작성권이 주최자에게 있다고 명시하는 내용은 2차적 저작물 작성권 그 자체를 양도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는 응모자가 동의한 후 출품했다고 해도 불공정하다고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임애리 법무법인 덕수 변호사도 "수상을 하면 무조건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2차저작물 작성권이 주최자에게 있도록 한 것)은 작가와 협상 가능성을 차단한 것이다. 불공정하다고 볼 여지가 높다. 특히 수상작에 대한 2차적저작물작성권이 주최자에게 있다는 내용은 공정위 공모전약관 시정조치 위반과 불공정약관에 해당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모전에 참여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정식 데뷔하지 않은 신인들이다. 이들은 이력 관리 등을 위해서 공모전에 참여해, 문제를 인지해도 이를 대등한 입장에서 항의할 가능성이 높지 않다.

카카오페이지 화면 /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카카오페이지 화면 / 카카오페이지 화면 갈무리
다만 카카오페이지는 올해 치르는 5회 추미스 공모전에서 ‘합의를 통해’라는 말을 추가했다. 이전의 일방적 조치보다는 한걸음 나아졌다는 평가다. 다만 한 변호사는 " 실제로 내부 (계약시 실제) 합의 규정은 앞선 공모전들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동의하지 않으면 수상 자체가 불가능할까봐 우려하는 신인작가들이, 그간의 관행대로 불공정 계약을 체결할 가능성이 높다는 뜻이다.

문제는 공모전의 불공정성이 명확히 인지되는 상황임에도 정부가 개입, 이를 해결할 방안이 마땅치 않다는 점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이미 과거에 체결된 계약 등 과거의 문제를 시정할 순 없다. 다만 앞으로, 불공정 약관으로 판단되면 수정, 삭제 조치할 수 있는 약관 시정이 가능하다. 이 때 공모전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는 직접 관계된 작가나 단체가 직접 약관 심사를 공정위에 청구해야한다"고 말했다.

문체부가 제시한 가이드라인도 권고에 그쳐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문체부 관계자는 "가이드라인은 권고 차원이다. 불공정 사례가 발생해도 문체부가 이를 개선하도록 법으로 강제할 방안은 없다. 불공정 공모전 계약 등 문제는 사법부의 판단을 받거나 공정위의 약관 시정 등 개입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카카오페이지는 "공정위의 2차 저작권법 가이드라인을 철저히 준수했다. 실제로 체결된 계약은 분명히 '이용허락'을 받는다. 그간 공정위로부터 어떠한 문제제기를 받은 적도 없다. 또한 자사 법무팀의 검토를 마쳐 공지하고 있으며 문제가 없다는 것을 확인됐다. 과거 가이드도 모두 확인했지만 공정위 가이드 미준수건이나 법적으로 문제 있는 안내문은 없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