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가전 업계가 유럽·중동 시장을 잡기 위해 총력을 벌인다. 글로벌 가전 빅마켓인 북미에서 삼성·LG 등 한국 기업에 밀린 중국 업체가 신시장으로 눈길을 돌린 것이다. 중국 가전사들은 저렴한 가격을 무기로 고객 확보에 나서며, 영향력 확대를 위한 투자협력도 강화하는 추세다.

16일 가전 업계에 따르면, 중국 기업 ‘창홍(Sichuan Changhong Electric Co. Ltd.·長虹)’은 수년째 유럽 시장 개척에 공을 들였고, 현재는 글로벌 핵심 시장으로 자리잡았다. 물류를 통한 거점 공략 전략이 빛을 봤다.

창홍은 1월부터 중국과 유럽을 잇는 중국고속철도(China Railway Express.·CRE)를 통해 창홍 화물열차를 운송하기 시작했다. CRE를 활용하면 운송 시간 단축을 통한 시장 점유율 상승이 가파를 것으로 전망한다. 2020년 코로나19 확산 후 중국과 유럽 간 철도 운송량은 전년 대비 50% 이상 급증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가는 기차가 늘어나면 자연스레 배송 물량도 동반 상승한다. 창홍의 2020년 유럽 매출은 전년 대비 3배 증가했다. CRE까지 가세한 만큼 매출에 대한 기대감이 높다.

‘CES 2019’ 창홍 부스 / 창홍
‘CES 2019’ 창홍 부스 / 창홍
‘하이얼(Haier·海尔)’ 그룹은 중동과 유럽 시장 공략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인다. 하이얼은 중국 3대 가전업체 중 하나로 고급화 전략을 내세웠다. 하이얼은 2019년 4월 파키스탄 라호르 지역에 하이얼 스마트홈(Haier SmartHome) 매장을 개설하고 고급 스마트 가전제품 등을 전시·판매 중이다. 하이얼의 파키스탄 내 마케팅 책임자는 2020년 내에 파키스탄 전역에 4개의 하이얼 스마트홈 매장을 추가로 오픈할 예정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이얼이 파키스탄을 주요 거점으로 선정한 이유는 2억명에 달하는 인구에 있다. 하이얼은 낮은 가격을 앞세운 브랜드 인지도 상승을 통해 시장을 공략한다. 파키스탄 시장에서 판매되는 제품 중 중국산은 상당한 인기를 끈다. 냉장고와 냉동고, 에어컨 시장에서 판매되는 수입 제품 중 중국산 제품의 점유율은 60~80%에 달한다.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선 하이얼은 기업 합병 전략을 택했다. 하이얼은 2019년 이탈리아 가전 기업 캔디(Candy)를 합병하며 2022년까지 서유럽 시장 점유율 3위에 오르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이외에도 일본 산요(Sanyo)의 백색 가전 부문과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 가전 부문, 뉴질랜드 피셔앤드페이켈(Fisher & Paykel) 등을 인수하며 적극적인 해외 브랜드 인수 활동을 펼친다.

하이얼 그룹 계열사 목록 / 하이얼 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하이얼 그룹 계열사 목록 / 하이얼 그룹 홈페이지 갈무리
중국 업체의 유럽·중동 시장 공략용 품목으로는 가전 외에 TV도 있다. ‘콩카(China Konka Group)’는 TV를 주로 생산하지만 다양한 가전제품도 판매하는 중외 합작기업 형태의 가전 업체다. 콩카는 2019년 이집트 토종 전기 브랜드인 호호(HOHO)와 합작회사를 설립해 LED 공장을 세우고 중동·아프리카 시장을 공동 개척하겠다고 선언했다.

콩카 측은 이집트를 주요 생산지로 정한 이유에 대해 "인구가 많고 정치적 조건이 안정적이며 투자 환경과 정책이 비교적 양호하기 때문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이집트가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에서 중요한 나라이며 이집트에 있는 콩카 공장은 아프리카 시장 진출의 포석이 될 수 있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LG전자는 2020년 글로벌 시장에서 판매된 TV 매출 중 각각 31.9%와 16.5%의 점유율을 기록했다. 양사는 냉장고, 세탁기 등 부문에서도 세계 시장을 이끈다. 중국 업체 입장에서는 한국 기업이 가장 큰 경쟁사인 셈이다.

국내 가전 업계 관계자는 "중국 가전은 TCL을 제외하면 기술 측면에서 삼성·LG와는 경쟁력이 떨어진다"며 "대신 유럽·중동 등 신시장에 진출해 시장 점유율을 높이려는 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조연주 인턴기자 yonjo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