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출범 지연이 벌써 3개월째다. 제4기 방심위가 공식 임기를 종료한 1월 29일 이후 공석이다. 청와대와 여야가 추천한 9명의 위원으로 방심위를 구성해야 하지만 정치권 합의 지연으로 벌어졌다.

방심위가 처리했어야 할 과제는 그냥 방치됐다. SBS ‘조선구마사’와 ‘펜트하우스2’, tvN ‘빈센조’ 등 드라마가 역사 왜곡과 폭력 등으로 논란을 겪었지만 제재는 없었다. 조선구마사만 방송사 자체 폐지 결정이 있었을 뿐이다. 제4기 방심위 임기 종료 후 3월까지 올라온 방송 민원만 7000건에 달할 정도로 상당하다.

방심위 출범이 지연된 것은 이번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니다. 그 동안에도 지각 출범은 예사였다. 제4기 방심위도 7개월쯤 늦게 시작하며 공백에 따른 문제가 상당했다. 4기 방심위가 출범한 임기 첫해 방송 심의 제재 건수는 전년 대비 170% 증가한 941건이었다. 심의를 하지 못했던 기간이 길었던 만큼 뒤늦게 기존 프로그램에 대한 심의를 한 결과 처리 건수가 확 늘어났다. 일부 프로그램에 대한 제재는 방송이 끝난 지 1년 반이 지난 후 되는 등 촌극도 벌어졌다.

콘텐츠 시장은 최근 연일 성장세를 보이며, 국내외 기업은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시장 확대에 발맞춰 상당 규모 투자를 이어간다. 넷플릭스는 5500억원, 웨이브는 1조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글로벌 K-콘텐츠 수요도 동반 상승하며 상당한 양의 신규 콘텐츠가 쏟아질 예정이다.

방송·문화 영역의 규제가 콘텐츠 생산을 방해하는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지적도 있지만 내용 규제는 필수다. 매일 같이 쏟아지는 콘텐츠 중 일부는 소수자를 차별하거나 혐오감을 높이는 등 공익성을 현저히 저해하는 내용이 있다면, 방심위는 이를 즉시 바로잡아야 할 책임이 있다. 시청자를 보호하고 콘텐츠 생태계 선순환을 이끌기 위해서다. 규제 공백에 따른 상황은 생겨서는 안된다.

제5기 방심위 출범을 위한 열쇠는 국회가 쥐었다. 국회는 정쟁에서 벗어나 생산적인 관점에서 방심위 위원 구성에 힘써야 한다. 정쟁에 따라 방심위가 늑장 출범한다고 하면, 위원 공백 최소화를 위한 기존 위원의 임기 연장을 자동화하는 등 조치라도 검토해야 한다. 지금처럼 방심위가 언제 출범할 지 모르는 상황이 지속된다면 K-콘텐츠 경쟁력 강화 역시 요원한 일이다. 국회는 민간 독립 기구인 방심위가 한시바삐 출범해 최소 규제 원칙에 따른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평화 기자 peacei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