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선 국민 달래기…뒤에선 물량 걱정
세계에 백신 구걸…집단면역 비상
열외로 뒀던 러시아 백신도 검토

정부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 계획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물량은 걱정말라’며 국민 달래기에 나섰던 것과는 달리 새로운 백신 공급 소식은 전무하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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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 백신 구걸 나선 정부

21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일부 글로벌 제약사들과 올해 공급분만을 뒤늦게 계약한 우리 정부는 국내 백신 수급 상황이 좀처럼 나아지지 않자 해외를 상대로 백신 구걸에 나섰다.

미국을 상대로는 ‘백신 스와프’를 제안했다. 백신 스와프란 미국이 한국에 백신을 긴급 공급하면 이후 한국이 백신을 위탁 생산해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구체화 여부는 미지수다. 세계적으로 백신 수급 불안이 심화하는데다가 미국에서는 백신 ‘부스터 샷(백신 효과를 보강하기 위해 일정 시간이 지난 뒤 추가 접종을 하는 것)’ 검토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21일 한 토론회에서 "미국은 집단면역을 위한 자국 백신 비축분에 여유가 없고, 자국내 사정이 매우 어렵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며 "미국 측에 ‘어려울 때 친구가 진정한 친구’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우리가 보여준 연대 정신에 입각해 현재 우리가 겪는 백신에서의 어려움을 미국이 도와줄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유럽을 상대로도 협조를 요청했다. 박병석 국회의장은 4월 20일 ‘한-유럽 의회 의장 대화’에서 다비스 마리아 시솔리 유럽의회 의장에게 "유럽에서 생산된 백신이 적시에 한국에 도입될 수 있도록 협조해달라"고 부탁했다.

유럽은 최근 아스트라제네카와 얀센 백신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지자 화이자와 모더나의 백신을 미리 사들이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들 제약사가 2023년까지 생산할 수 있는 분량이다. 시솔리 의장은 "현재 백신 공급은 세계적으로 많은 문제에 직면해 있다"며 "백신 문제를 우선순위로 처리할 것이고, 박 의장이 말한 내용도 수용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했다.

여의치 않자 러시아 백신도 검토
"상반기 1200만명 1차 접종 하겠다"

정부는 열외로 뒀던 러시아 백신 검토에도 나섰다. 세계 각국의 상황이 여의치 않은데 따른 궁여지택이다. 손영래 중앙사고수습본부 사회전략반장은 21일 정례 브리핑에서 "러시아 스푸트니크V의 허가와 검증 절차를 주목하고 있다"며 "유럽의약품청(EMA)도 검토하는 만큼 상세한 데이터를 확보하는 동시에 해외 허가 사항도 참고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 같은 노력을 통해 상반기 1200만명을 대상으로 1차 접종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손 반장은 "6월 말까지 감염 취약시설에 있는 이들을 중심으로 1200만명의 접종을 마치는 것이 1단계 목표다"라며 "낮은 예약률로 접종 대상자가 줄어 백신이 남으면 후순위 접종 대상자를 먼저 접종시켜서라도 1200만명을 채우겠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백신 구걸 및 1차 접종 계획이 이뤄질 수 있을지에 의문을 제기하는 분위기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의료계 한 관계자는 "백신을 미리 확보한 국가도 코로나19 유행은 여전히 심각한 상태다"라며 "여기에 세계적으로 백신 수급이 불안정한 상황인 만큼, 자국민이 겪을 위험성을 감수하면서까지 백신을 타국에 공급하는 국가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그는 이어 "백신 패권주의가 심화하고 있어 국내 백신 개발을 전폭 지원하는 등의 적절한 대응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