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자산을 ‘인정할 수 없는 자산’이라며 투자자 보호는 없다고 못을 박았다. 가상자산 시장이 활기를 띠는 가운데 정부가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제도화를 통해 가상자산 시장을 키우는 해외와 정반대의 모습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정부의 이 같은 태도를 두고 "혁신 금융을 보는 안목이 세계 어디보다도 뒤처진다"며 우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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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성수의 난 시작되나…"투자자 보호 안 한다"

22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가상자산은 인정할 수 없는 자산이다"라며 "투자자 보호에 나설 수 없다"고 밝혔다. 은 위원장의 이번 발언은 가상자산 투자자에 대한 정부 보호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쏟아지는 가운데 나왔다.

은 위원장은 투자자 보호가 필수적인 주식·자본 시장과 달리 가상자산 시장은 다르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 "정부는 가상자산을 ‘투기성이 강하고 내재가치가 없는 자산’이라고 본다"며 "사람들이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보호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루에 20%씩 올라가는 자산을 보호하면 오히려 투기 광풍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은 위원장 생각이다.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해서도 으름장을 놨다. 은 위원장은 "특금법 시행으로 거래소 등록 신청을 받고 있지만, 현재까지 등록한 곳은 없다"며 "약 200개의 국내 거래소가 9월 들어서서 갑자기 폐쇄될 수 있다"고 했다.

업계 "해외는 제도화로 시장 활성화…韓 뒤처진다"

관련 업계는 답답하다는 입장이다. 해외에선 제도화를 통해 시장을 키우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만 180도 다른 시각으로 시장을 옥죄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미국에선 최근 가상자산 제도화에 한 획을 긋는 행보를 보였다. 예컨대 미국 하원은 ‘2021년 혁신장벽 철폐법’을 의결하면서 규제당국과 가상자산 시장 참여자 간 소통을 통해 규제를 명확히 제시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해당 법안은 구체적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또는 선물거래위원회(CFTC)가 각각 어떤 디지털 자산에 대해 규제 관할권을 가질 수 있는지, 어떤 디지털 자산을 상품으로 인정할지 등의 정책을 규정한다. 디지털 자산 연구뿐 아니라 투자자 보호 정책도 제시한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증권사 한 관계자는 거꾸로 흘러가는 우리나라의 가상자산 인식을 두고 "은 위원장 발언에 따르면 정부는 투자자 보호 및 제도화에 대해서도 여전히 부정적인 시그널을 내비치고 있다"며 "모든 가상자산 거래소가 9월까지 등록을 마치지 않으면 폐쇄된다는 발언보다는 세부적인 조치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라고 꼬집었다.

가상자산 업계 한 관계자도 같은 입장을 내비쳤다. 이 관계자는 "국내 금융 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잃어가는 이유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다"라며 "혁신 금융에 대한 이해도가 명백히 떨어진다"고 지적했다. 그는 "해외에서는 가상자산 거래소를 증시에 상장시키는 가운데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은 꿈도 꾸지 못한다"며 "변화를 읽어내는 힘을 길러야 한다"고 부연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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