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업계에 이어 이용자·여당의원들도 비판
‘박상기의 난’ 이은 ‘은성수의 난’으로 재점화
불통의 아이콘 되나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사면초가에 빠진 모양새다. 업계와 충분히 소통하지 않고 금융소비자보호법(이하 금소법)을 강행해 금융권과 대립각을 세운 은 위원장이 억눌린 2030의 뇌관까지 건들면서 여야 국회의원들로부터 집중포화를 맞고 있다.

지난 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한 은성수 위원장 / 금융위원회
지난 1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열린 은행장 간담회에 참석한 은성수 위원장 / 금융위원회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청원글이 13만1000명을 돌파했다.

은성수 위원장 사퇴 청원글 등장 3일만에 13만명 동의

청원인은 23일 청원글을 게시하며 "잘못된 길을 가고 있으면 어른이 가르쳐야 한다고 하셨죠? 대한민국 청년들이 왜 이렇게 내몰리게 됐을까요? 지금의 잘못된 길을 누가 만들었는지 가만히 생각해 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 말에 책임지고 자진 사퇴하십시오"라고 밝혔다.

그가 이처럼 청원한 것은 은성수 위원장의 가상화폐 정책에 불만을 표출하기 위함으로 분석된다. 자신을 평범한 30대 직장인이라고 소개한 청원인(게시자)은 "4050 인생 선배들은 부동산이 상승하는 시대적 흐름을 타 노동 소득을 투자해 쉽게 자산을 축적해 왔다"며 "그들은 쉽게 돈을 불렸지만, 이제는 투기라며 2030에겐 기회조차 오지 못하게 각종 규제를 쏟아 내고 있다"고 일갈했다.

그는 이어 "덕분에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집 하나 가질 수 없는 현실에 직면하게 됐다"며 "어른들은 부동산 투기로 자산을 불려놓고는 가상화폐는 투기니 그만둬야 하는 부적절한 것이라는 게 납득할 수 없다"고 꼬집었다. 투자자를 보호해 줄 근거가 없다면서 내년부터 가상화폐로 인한 소득에는 과세하겠다는 방침도 모순이라고 덧붙였다.

앞서 은성수 위원장은 4월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최근 암호화폐 열풍에 따른 투자자 보호 대책을 묻는 여야 의원의 질의에 "정부는 가상자산을 투기성이 강하고 내재가치가 없는 자산이라고 본다"면서 "사람들이 많이 투자한다고 해서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잘못된 길로 가면 어른들이 이야기를 해줘야 한다"고 말해 논란을 부추겼다.

여당 의원들 조차 비난

은 위원장이 이같은 발언으로 구설에 오른 가운데 국회의원들도 비난 행렬에 가세했다.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2018년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암호화폐를 투기 도박에 비유한 데 이어 최근 은 위원장의 발언은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라며 "암호화폐는 이미 세계 경제에 깊숙이 파고 들었기 때문에 이를 논의할 범정부적 테이블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금융위원장이 불특정 다수가 거래하는 암호화폐와 일대일 매매 기반인 그림 거래를 비교했는데 과연 이것이 합당한가"라고 지적하며 "많은 국민이 참여하는 암호화폐 거래대금도 정확하게 모르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전했다.

전용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제발 정신차리라. 금융위원장의 경솔한 발언에 상처받은 청년 세대에 대신 사과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26일 기준 13만명을 돌파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참여한 인원이 26일 기준 13만명을 돌파했다. / 청와대 홈페이지
금소법 시행으로 이미 보였던 불통 행보

은 위원장은 앞서 금소법 시행을 두고도 업계와 대립각을 세우며 불통행보를 보였다. 업계 관계자들은 금소법에 대비할 기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한목소리로 지적했지만, 법 시행은 강행됐다. 지난해 통과된 금소법 시행령은 법 시행 일주일 전, 시행세칙은 하루 전에 나왔다.

법 시행 후 강화된 설명 의무로 인해 상품 가입에 한 시간이 넘게 걸리는 등 업무 효율이 크게 떨어지자 은행권 CEO들은 은 위원장에게 개선책을 요구하기도 했다. 이에 은 위원장은 "상품 설명을 빠짐없이 읽으라는 의미는 아니었는데 유감이다"라며 "금융투자상품의 충분한 설명과 이해 없이 시간에 쫓겨 금융상품을 선택하게 하는 것은 소비자 선택권을 사실상 사장하는 것이다"라고 말해 불통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금융업계 관계자는 "절차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법을 위반하는 일을 피하고자 보수적 선택을 이어갈 수밖에 없다"며 "이같은 애로사항을 개선해 달라는 것인데 현장 상황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업계와 시대 흐름에 맞지 않는 정책과 발언으로 사면초가에 빠진 은 위원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업계를 넘어 정치권과 시민 사이로 커지고 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