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도 탈탄소 정책에 화답

글로벌 주요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급감 의지가 강해지면서 국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업계의 걱정이 태산이다. 정부가 무리하게 온실가스 감축에 속도를 낼 경우 호황을 맞은 사업자의 부담이 확산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최근 세계 기후정상회의에서 2030년까지 미국의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약속한 ‘2025년까지 26~28% 감축’보다 두 배쯤 규모를 늘린 공격적인 목표다.

문재인 대통령도 여기에 화답했다. 문 대통령은 국가 온실가스 총배출량을 목표 대비 추가로 감축할 것을 약속했다.

그는 "한국은 2020년에 ‘2030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30년까지 2017년 대비 24.4% 감축하기로 했다"며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의지를 담아 이를 추가 상향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 각 조선일보DB·바이든 페이스북
문재인 대통령(왼쪽)과 바이든 미국 대통령 / 각 조선일보DB·바이든 페이스북
반도체 산업은 300개에 달하는 제조 공정을 거치는 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물을 쓴다. 세계 각국이 벌이는 탄소와의 전쟁에서 키를 쥔 업종이다. 호황을 맞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반도체 생산라인 가동률은 수년째 100%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탄소 저감을 위한 저전력 제품 개발과 전력 효율화는 물론 자원 순환, 생태 복원 등 환경 보호 활동을 통해 지속가능경영 전략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저전력 반도체를 개발해 전력 효율화를 꾀한다. 데이터센터 서버용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 대신 솔리드스테이드드라이브(SSD)를 탑재하면 연간 3테라와트시(TWh) 전력을 줄일 수 있다. 서버용 D램도 DDR4 대신 최신 DDR5로 교체하면 1TWh의 전력량을 절감할 수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전력 소모가 적은 반도체를 개발하면 세계 데이터센터의 전력 소모를 줄일 수 있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는 2013년 온실가스 태스크포스(TF) 내 이뤄지던 에너지 소모량 절감 활동을 전문적으로 수행하기 위해 에너지 절감 TF를 새롭게 구성했다. 에너지 절감 TF는 단기 프로젝트가 아닌 중장기적 관점을 위해 ISO 50001(에너지경영시스템) 인증 및 유지에 집중한다.

SK하이닉스는 3단계 처리 절차를 거쳐 질소산화물(NOx) 등 온실가스의 원인인 공정가스를 분해하고 있다. SK하이닉스는 90% 이상의 높은 질소산화물 제거율을 자랑하는 질소산화물 포집(De-NOx) 시스템을 이천 사업장 내 M14공장을 중심으로 M16과 청주 사업장까지 설치할 예정이다. 이천·청주사업장 내 모든 1톤 차량은 2025년까지 전기차로 교체한다. 목표를 달성할 경우 연간 400톤쯤의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다.

LG디스플레이는 그동안 370억원의 환경투자를 통해 2020년 온실가스 배출량을 2014년 배출량 대비 300만톤 줄였다. 감량한 온실가스 300만톤은 30년생 소나무 4억5000만그루 소나무 숲이 1년간 흡수하는 탄소량과 맞먹는다.

LG디스플레이는 LCD 대신 부품수가 적고, 자원 재활용률이 높은 OLED 전환을 앞당기고 있다. LCD 패널의 경우 패널 자원 재활용률이 79.1%에 불과하지만, OLED 패널은 92.2%의 부품을 회수해 재사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각 업계가 온실가스 저감을 위해 자체 노력을 기울이고 있음에도, 온실가스 배출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어 아쉬움을 더한다. 반도체, 디스플레이 제조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물질 세척에 활용하는 삼불화질소(NF3)가 국내에서 온실가스로 추가 지정될 가능성이 크다.

NF3는 국제적으로 온실가스에 포함된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 수소불화탄소, 과불화탄소, 육불화황 등 6개 온실가스만 이산화탄소 기준으로 환산하고 있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품 생산량이 늘고 기술 발전으로 공정이 복잡해지면서 NF3 사용량도 느는 추세인데, 대체 물질을 찾기 어려워 업계의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이동욱 키움증권 연구원은 "정부가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공정에 주로 사용하는 NF3를 온실가스로 포함시키려는 작업을 추진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NF3 대체 후보물질이 십수년 내 개발될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