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심화된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과 국내 경쟁력 강화를 위해 현행 제도를 뛰어넘는 파격적인 세제혜택과 선도 기업에 대응하는 장기적인 관점의 정부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완성차와 반도체 등 차량용 반도체 관련 산학은 아직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의 인프라와 기반이 걸음마 단계에 가까운만큼 지속적 관심과 조속한 특별법 제정 등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28일 서초구 더케이호텔에서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론회'가 열렸다.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가 주체한 이번 토론회에는 장재호 현대모비스 전무와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 등 완성차 관련 업계 전문가와 이윤종 DB하이텍 부사장 등 반도체 분야 기업인도 참여했다. 국내 반도체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의견교환과 최근 심화된 차량용 반도체 수급문제와 지원·해결책 제안 등이 이뤄졌다.

국내 반도체 산학 관계자가 참석한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론회 /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국내 반도체 산학 관계자가 참석한 반도체 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토론회 /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은 5월 들어 심화될 예정이다. 현대차와 기아의 경우 그동안 비축해둔 재고와 생산조절 등을 통해 4월까지 고비를 넘겼지만 본격적인 보릿고개가 시작되면서 어려움에 처할 것으로 전망된다.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대만 반도체 생산기업인 TSMC에서 전적으로 생산을 맡고 있는데 기후 요인과 수요 물량 급증 등 요인으로 인해 하반기에도 공급 원활이 불투명하다.

업계는 그간 차량용 반도체 파운드리와 팹리스 기반이 부족해 이번 문제가 불거졌다고 파악한다. 사실상 불모지에 가까운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과 시설을 다지기 위해 조속한 정부지원을 바란다. 연구개발사업에 대한 지원말고도 생산시설 투자를 위한 50%에 준하는 세제혜택 등 현행 제도보다 파격적인 시설투자 지원이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토론회 좌장을 맡은 박재근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장은 주제발표에서 "국내 정부 지원수준은 미국과 유럽은 물론 중국과 대만과 비교해도 지원수준이 낮다"며 "3%인 현행 시설투자세액공제도 실상은 그에 못미치는 수준이다"라고 꼬집었다.

이어 "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 차량용 반도체 시장이 당장은 시스템 반도체와 메모리 반도체 등에 비해 시장 규모가 크지 않지만 완성차 시장의 급속한 미래화로 빠른 시장 성장이 예상된다"며 "섀시와 파워트레인 등 차량 주요 부품에 대한 반도체 수요가 증가할 것으로 보이는 만큼 국내에 차량용 반도체 신규 팹 등 설비 건설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업계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는 국내 팹리스 업체에서도 설계 도전에 나서고 있지만 인포테인먼트 부문에 상당부분 집중돼있는 상태다. 차량용 반도체는 IT에 주로 사용되는 반도체와 달리 설계와 공정 방식이 다르고 다품종 소생산에 가까운 상품이라 국내에 설립된 반도체 공정설비로는 생산이 쉽지 않다.

토론회에서 발언중인 장재호 현대모비스 전무 /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토론회에서 발언중인 장재호 현대모비스 전무 /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장재호 현대모비스 전무는 "완성차 기업에 나타난 반도체 수급 문제는 파운드리 업체에서 당장 공급량을 늘려주지 않는한 해결은 어렵다"며 "차량용 반도체 개발과 활용이 르네사스 등 해외기업에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고 설명했다.

장 전무는 이어 "차량용 반도체의 경우 국내 관련 업체에서도 개발과 도전을 진행중이지만 제어나 차량용 MCU 등 중요 반도체 부품의 경우 전량 수입에 의존해 사용한다"며 "정부 차원에서 개발부터 수요까지 연계되는 체계적인 프로젝트를 추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실리콘카바이드(SiC) 반도체 등 최근 전기차 주요 부품으로 활용되는 전력반도체 지원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실리콘카바이드 반도체는 아이오닉5 등 현대자동차 전용 전기차에 활용된 반도체다. 기존 실리콘 반도체보다 고온 등 극한 환경에 강한 특성을 지녀 자동차 내부 부품의 고신뢰성을 담보하고 고전압을 통한 장비의 경량화도 꾀할 수 있다.

이윤종 DB하이텍 부사장은 "실리콘카바이드를 비롯한 화합물·전력반도체의 경우 아직 국내 생태계는 많이 열악한 상태다"라며 "전력반도체 등 분야는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고 현재 선도기업처럼 장기간 동안 개발과 투자가 이루어져야하는 만큼 정부와 산업의 인내심있고 장기적인 세제지원과 대형 국책개발사업 등 긴 호흡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서 전력반도체 관련 지원과 장기적 안목의 프로젝트 중요성을 강조한 이윤종 DB하이텍 부사장 /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토론회에서 전력반도체 관련 지원과 장기적 안목의 프로젝트 중요성을 강조한 이윤종 DB하이텍 부사장 /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으로 인해 완성차 기업의 생산 공장이 중단을 거듭하면서 발생한 국내 완성차 관련 부품 기업들의 힘든 현황에 대한 보고와 국내 파운드리 기업에 대한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 설립에 대한 요구도 나왔다.

김주홍 한국자동차산업협회 상무는 "완성차 기업 자동차 공장 가동 중단은 관련 부품 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며 "최근 조사에 따르면,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으로 인한 완성차 공장 가동중단으로 어려움을 겪는 기업이 전체 30%이상 인것으로 나타났다"고 제시했다.

그는 또 "완성차 기업 측에서는 차량용 반도체 수급 부족에 대응해 비인기 차종 감산을 시도하고 있다"며 "국내 파운드리 업체에서도 단순 수익성에만 집중하지 않고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 증설을 고려하는 등 국가적 차원에서 검토를 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국내 차량용 반도체 산업 성장을 위해 정부 지원말고도, 국내 완성차 기업에서 적극적으로 국내 소부장 기업과 상생하려는 노력에 나셔야한다는 조언도 제시됐다. 차량용 반도체가 비록 고신뢰성 등을 이유로 기존에 사용하던 기업 제품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지만, 전체적인 국내 완성차 부품 시장 성장과 외산 의존 문제를 타개를 위해선 완성차 기업이 협력에 개방적인 태도를 취해야한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안진호 한양대 교수는 "국내에서 차량용 반도체에 대한 정부지원이나 연구·개발 등 투자가 아예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라며 "과거 국내에서 지원을 받아 개발됐던 차량용 반도체가 국내 완성차 기업에서 외면당한 뒤 해외기업으로 이전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산 기업 제품에 의존하다 어려움을 겪는 상황이 현재 완성차 시장에서 이어지는 만큼, 국내 완성차 기업의 상생 노력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남겼다.

이민우 기자 mino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