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이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고도화에 적극 나서고 있다. 기술의 발달로 자금 세탁 과정이 더 교묘하고 복잡해지고 있어 기존의 기술로는 이를 방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첨병역할은 광학문자인식(OCR)과 자연어처리기술(NLP) 맡았다. 다만 업계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더 발전할수록 금융 일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 아이클릭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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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은행권을 중심으로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고도화 작업이 속속 진행 중이다. 이는 기술의 발전으로 자금세탁 방식도 점점 교묘하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현 시스템으로는 다양한 자금세탁 징후를 포착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에 첨단 AI 기술을 접목해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고도화에 나선 것이다.

NH농협은 지난해 11월 거래모니터링 체계 효율화 및 RPA 기반 수기 프로세스를 자동화했다. 올해는 AI(머신러닝) 도입을 통한 의심거래보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작업에 매진하기로 했다. 하나은행은 올해 1월 ▲자금세탁 유형론을 활용한 시나리오 확장 ▲자금 세탁 관련 자동보고서 작성 지원 기능 등을 강화하고 자금세탁 방지 솔루션을 국외 점포에도 확대 도입하기로 했다. 우리은행 관계자도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할 수는 없지만 지속해서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고도화 작업을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현재 금융권이 활용하는 자금세탁방지 솔루션은 로봇프로세스자동화(RPA) 기술을 기반으로 단순 반복 업무를 자동화하거나, 자금 세탁 징후에 대한 시나리오(Rule base)를 바탕으로 작동하는 수준에 머물러있다"며 "시스템에 입력된 시나리오를 벗어나는 자금세탁 징후는 포착할 수 없다"고 밝혔다.

OCR과 NLP 접목이 핵심

이에 은행권은 광학문자인식(OCR)과 AI 자연어처리기술(NLP) 접목에 눈을 돌리고 있다.

OCR은 사람이 직접 쓴 글이나 이미지 속에 있는 문자를 스캔으로 추출하고 이를 기계가 인식할 수 있도록 디지털화하는 기술이다. OCR이 정확하게 금융데이터를 읽어 AI가 읽을 수 있도록 항목 등을 분류하면 자연어처리 기반 AI가 잘못된 인식을 교정하고 자금세탁 징후를 포착한다.

이 기술이 적용되면 정형화된 데이터뿐 아니라 비정형 문서에서도 유의미한 정보를 선별해 자금세탁 의심 사례를 전수 조사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실시간 대응도 가능할 전망이다.

현재 솔루션 고도화 작업은 자연어처리 기능을 탑재한 AI가 자금 세탁으로 의심되는 사례를 자동 검출해 리포팅하면 베테랑 직원이 노하우를 바탕으로 정밀 분석해 다시 AI에 학습시키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자금세탁 징후 포착 업무, AI로 넘어갈 가능성 높아져

업계 일각에서는 베타랑 직원의 노하우를 AI가 학습하고 나면 자금세탁 방지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들의 일자리가 대폭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는 우려가 나온다. 아직 그 시기를 정확하게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고도화 작업이 이미 진행 중이라는 점에서 가시권에 들었다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그간 자금세탁 시나리오를 최대한 확보하고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은 사례에 대한 보고서를 자동으로 작성하는 기술에 금융권은 많은 투자를 단행해왔다"며 "비정형화된 문서까지 읽고 의심 징후를 포착할 수 있는 자연어처리 기술이 발전하면서 자금세탁방지 솔루션 고도화 작업에 속도가 나고 있다. 이 작업이 끝나면 국내뿐 아니라 국제적 자금세탁방지업무에도 활용할 수 있어 도입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연어처리 기술을 개발하는 스타트업 관계자는 "오픈AI가 개발한 GPT-3 언어 모델을 중심으로 AI가 글 맥락을 이해하고 실제 사례를 선별할 수 있는 영역까지 발전하는 속도가 예상보다 빠르다"며 "아직은 베테랑 직원이 최종 검수하는 작업이 필요하지만, 자금세탁방지 솔루션이 고도화된다면 현재 사람이 담당하는 검수 전 단계의 업무까지 모두 자동화할 수 있어 금융권의 일자리 감축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동진 기자 communication@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