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희찬 안국법률사무소 변호사 인터뷰
"정부의 고강도 규제 ‘위헌 여부’ 가리자"
가상자산, 결과에 관계 없이 법적 지위 누릴 수 있을 듯

2017년 12월 문재인 정부는 가상자산 투기 열풍을 잠재우겠다며 고강도 규제를 내놨다. 이에 투자자 347명을 대표해 한 변호사가 정부의 고강도 규제를 두고 "개인의 행복권과 재산권을 침해하는 만큼, 위헌이다"라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헌법소원 심판 청구 2년 1개월 만에 헌법재판소는 이를 공론화했다. 정부조치 이후 암호화폐에 대한 관심이 급격히 식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헌법소원 공개 변론에서는 치열한 공방전이 펼쳐졌다.

당시 청구인 측 대리인(정희찬 안국법률사무소 변호사)은 "정부의 고강도 규제는 국민의 재산권과 평등권, 행복 추구권을 침해한다"며 "아무런 법적 근거 없이 권력으로 투자 행위를 제약해선 안 된다"고 주장했다. 피청구인(금융위원회) 측은 "정부가 취한 대책에는 합리적 이유가 있다"며 맞받아쳤다.

헌법재판소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정희찬 안국법률사무소 변호사/ 안국법률사무소
헌법재판소에 문제를 제기하고 나선 정희찬 안국법률사무소 변호사/ 안국법률사무소
그로부터 또 다시 1년 4개월이 지났다. 잠잠하던 헌법재판소가 침묵을 깨고 움직임을 보였다. 헌재가 정 변호사에게 사건과 관련한 추가 자료를 요청한 것이다. IT조선은 이에 정희찬 안국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를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정 변호사는 "사건에 대한 결정문이 조만간 나올 것으로 보인다"며 "결과가 어떻게 나오든 결정문이 나오면 이 시장에는 명확한 법적 지위가 생긴다. 의미있는 사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다음은 정 변호사와의 1문 1답.

― 헌법재판소에서 ‘보정명령등본’을 발신하며 추가 자료를 요청했다.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요구했나.

"청구인들의 가상자산 거래소 회원가입 내역과 해당 거래소를 통한 거래 일시 등을 요청했다. 정부 규제 이전에 거래소에 가입한 청구인에 대해선 당시 발급받은 가상계좌의 형태 등을 소명하라고 했다."

― 심판 대상은 문 정부의 고강도 규제인데, 이 부분을 소명하라고 한 이유는 무엇인가.

"결정문을 작성하기에 앞서 기초적인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위함이라고 생각한다. 헌재가 사건을 면밀히 들여다 보고 있다는 뜻인 만큼, 사건 심리에 있어 진전이 있다는 뜻으로 받아드리고 있다. 이르면 올해 안에 결정문이 나올 것이라고 본다."

― 헌법소원 공개 변론이 이뤄진지 1년 이상이 지났다. 1년의 공백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단순 기술 문제가 아니라 무형의 대상물이 재산권으로 포섭될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 때문에 해외 동향과 국내 규제 및 기조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기 위해 시간을 가진 것이라고 본다. 헌재에서도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웠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는 산업의 미래를 내다보고 결정을 내려야 했기 때문이다."

― 결과와 관계없이 의미 있는 사건으로 남을 것 같다.

"그렇다. 이기든 지든 결론만 나온다면 이 시장은 명확한 법적 지위를 갖게 된다. 이번 헌법소원은 정부와 국민 간의 싸움이다. 민간에서 통제 불가능한 대상을 제시한 가운데 정부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깊은 철학 없이 싸운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번 헌법소원은 정부와 국민을 공론의 장으로 이끌었다. 결정문에 따라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방향성이 제시될 것이라고 본다."

― 문제점 제기에도 아직도 가상자산 시장을 책임질 어른이 우리나라엔 없다. 여전히 은행은 정부 눈치를, 산업은 답답함을 호소하는데 어떻게 보는지.

"개인적으로 이 시장으로 인해 ‘우리나라가 과연 입헌주의 국가가 맞는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근거 법률 없이 금융위원장 등 정부 고위 관계자가 언론에 산업과 관련한 부정적 견해를 공포하는 식으로 시장이 돌아갔기 때문이다. 산업을 책임을 질 어른도, 관련 법률도 없었다.

산업을 망가뜨린 후 사후적 입법을 통해 위헌 여부가 해소된다고 해도 사실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꼴만 된다. 이러한 형식은 허용되어선 안 된다."

― 위헌 여부가 판가름 나지 않은 가운데 국내 첫 가상자산 관련 법안인 특금법이 시행됐다. 해당 법안에 대한 생각은.

"투자자 보호에 대한 점이 없는 것은 아쉽지만, 그나마 가상자산 시장 관련 법안을 마련한 것은 잘한 일이라고 본다. 하지만 해당 법률이 기본권 침해의 최소성 원칙 등 합헌 요건을 갖췄는지는 의문이다. 마치 금융 분야의 국가보안법(반국가활동을 규제하여 국가의 안전보장을 위해 제정한 법률)이 탄생한 꼴이라고 본다. 특금법으로 개인의 자유와 권리 보장은 커녕 오히려 규제를 통해 시장을 더 조였기 때문이다.

이 법은 가상자산 산업에 대한 법안이 아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자금세탁방지와 관련해 원래 있던 기존 법안의 규제 대상을 넓힌 것 뿐이다.

다만 희망적인 부분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최근 들어 가상자산 시세 조종, 세금 등과 관련해 추가적인 법안이 발의되고 있는 것으로 안다. 특금법과의 관계를 잘 형성한다면 시장이 성장할 기반은 마련될 것이라고 본다. "

―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에 손을 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

"통화고권을 통해 금융 산업을 규제하는 국가 입장에선 가상자산이 못 미더울 수 밖에 없다. 비트코인만 봐도 중앙체제가 없지만, 통화와 유사한 기능을 하기 위한 시도가 끊임없이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핵무기가 무섭고 싫다고 해서 물리학을 안할 수는 없지 않느냐. 핵무기를 잘 통제하면 오히려 이 때문에 평화가 유지되는 역설이 있다. 다른 국가처럼 핵무기로 인해 국가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고, 적극 대응해야 한다.

가상자산도 마찬가지다. 돌이킬 수 없는 현실이다. 금융위원회에서 이를 거부하는 근 3년간 다양한 가상자산 기반 금융상품이 생겨났다. 신산업에 있어 3년이란 시간은 충분히 제도화하고 다른 국가 대비 우위를 선점할 수 있을 만큼 긴 시간이다. 이러한 현실을 직시하고 미국과 중국, 일본, 유럽 사례를 참고해 국익과 경제에 도움될 만한 입안을 마련해야 한다."

― 일각에선 우리나라가 한참 늦었다고 평가한다. 지금 와서 현실을 직시하더라도 뒤처지지 않을까.

"아직 늦지 않았다. 가상자산에 대한 관심은 세계적으로 높고, 우리나라 기업에서도 관련해 움직임이 있다. 이를 동력 삼아 기업을 격려하고, 규제를 완화하는 쪽으로 방향을 튼다면 충분히 기회를 다시 뺏어올 수 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