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 ‘이정훈 리스크’ 또 발목...계좌심사·재판 무관하나

빗썸의 든든한 우군인 NH농협은행의 고심이 깊어진다. 가급적 빗썸과 실명계좌 입출금 계정(이하 실명계좌) 계약을 유지하겠다는 입장이지만, 국내외 규제 강화로 위험 부담이 커지면서 관계 유지가 쉽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특히 빗썸 실소유주인 이정훈 전 의장이 사기혐의로 검찰에 넘겨지면서 농협의 셈법이 복잡해지고 있다.

득보다 실 커…정부 ‘반(反)가상자산’ 기조로 은행권 ‘거리두기’

26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빗썸과 실명인증계좌 제휴를 통해 쏠쏠한 재미를 본 농협이 고심에 빠졌다. 수익 대비 부담해야 할 위험이 커졌기 때문이다. 빗썸이 오랫동안 안고 있는 최대주주 리스크가 이유다. 일각에서는 농협이 이정훈 빗썸 전 의장의 범죄혐의로 발생하는 위험에 대해서도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한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좌불안석인 상황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농협은 올해 1분기 빗썸으로부터 13억원의 수수료를 거둬들였다. 같은 기간 순이익률 4097억원과 비교하면 미미한 수준이지만, 올해 가상자산 실명계좌 수가 전년대비 70% 이상 증가했다는 점을 비춰보면 적지 않은 고객 확대 효과를 본 셈이다. 가상자산 신규 계좌만 25만개를 기록할 정도다.

여기에 정부의 ‘반(反)가상자산’ 분위기는 위험 부담을 가중시킨다. 앞서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가상자산을 인정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특정금융법(이하 특금법)이 시행된 지 불과 한달 만이다. 이로 인해 가상자산 시장은 한 차례 출렁거렸다. 시중은행들은 은 위원장의 발언을 사실상 ‘계좌 발급 거부 지침’으로 받아들였다. 하나·국민·우리 등 금융지주사가 일제히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은 위원장의 발언은 같은 달 정부가 발표한 ‘가상자산 불법행위 특별 단속 방안’과 연장선상에 있다. 실명계좌 발급을 최소화해 시장을 간접적으로 규제하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해외에서 자금세탁방지업무를 맡고 있는 한 전문가는 "한국의 규제 상황을 보면 대형은행에 가상자산 시장은 위험에 비해 수익이 크지 않은 편이다"라며 "금융당국의 장이 부정적인 언급을 한 상황에서 계좌를 발급하기나 유지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자금세탁 정황 드러나면 실질적인 불이익...관건은 위험 발생 기준과 가능성

통상적으로 은행은 위험평가 심사 결과 자금세탁 위험이 크다고 볼 경우 특금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고 판단, 입출금을 정지하고 계약을 해지하는 절차를 거친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원화마켓을 닫거나 영업을 정지해야한다. 자금세탁 시도를 사전에 차단하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은행이 제공한 실명계좌를 통해 자금세탁을 시도한 정황이 드러나면 리스크는 현실이 된다. 실제 2017년 농협 뉴욕지점은 자금세탁방지 업무 미흡으로 119억원의 과태료를 부과받았다. IBK기업은행 뉴욕지점도 1049억원의 벌금을 납부했다.

정부에도 부담이다. 정부가 국제 자금세탁방지지구인 FATF의 권고 사항을 이행하지 않았다는 판단을 받은 경우도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 경우 국제 신용도가 떨어져 경제적 불이익을 입을 수 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권이 가장 우려하는 부분이다.

관건은 실소유주와 관련된 위험 발생 기준과 가능성을 어떻게 보느냐에 있다. 해외의 경우 단순히 최대주주 리스크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위험이 발생했다고 보는 경우는 드물다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앞서 언급한 전문가는 "의심 정황만으로 계좌를 동결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다"며 "다만 자금세탁 위험이 높은 개인의 개별 계좌를 정지할 수는 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의장이 빗썸을 이용해 자금세탁을 시도하거나 그럴 가능성이 높아야 농협이 빗썸과 거래를 중단할 명확한 근거가 생긴다는 설명이다.

결과적으로 국내는 자금세탁 위험 신호를 더 넓게 볼 수밖에 없는 셈이다. 이 전 의장이 사기 혐의를 받는 사실만으로 실제 자금세탁 위험이 커진 것으로 보자는 게 은행연합회가 내놓은 자료의 골자다. 자금세탁 위험을 엄격하게 방지하겠다는 것이다. 다만 이 전 의장이 실형을 선고받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이 경우 자금세탁 위험이 더욱 커졌다고 보는 게 국내외 관계자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FATF R33과 금융위원회 금융정보분석원 ‘자금세탁방지 및 공중협박자금조달금지에 관한 업무규정’ 41조 (실제당사자)에 근거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다. 농협도 빗썸과 계좌를 유지하기 더욱 어려워 진다는 평가다.

농협은 일단 빗썸과 계좌 유지에 무게를 두면서 정부의 규제 의지와 시장 상황을 보겠다는 입장으로 해석된다.

농협 관계자는 "현행 법령상 가상자산 사업자 신고 불수리 요건에는 대표자와 임원만 언급하고, 대주주에 관한 사항은 들어있지 않다"면서도 "자금세탁방지센터에서 위험평가 시 이러한 사항을 평판리스크에 반영할 수는 있다"고 전했다. 최대주주 리스크에 대한 추가 심사에 대해서는 "아직 위험평가를 실시하지 않았기 때문에 보완조치를 요구하지는 않았다"고 답했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