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네이버 직원이 극단적 선택으로 세상을 떠났다. 경찰은 그의 자택에서 직장 내 갑질 등 업무 상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내용이 담긴 메모 형식의 글을 발견했다. 네이버 직원들은 특정 직원의 직장 내 지나친 괴롭힘과 이를 상부에 건의해도 해소되지 않는 위계적 구조로 그가 극단적 선택에 이르렀다면서 이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앞서 카카오에서도 지난 2월 한 직원이 직장 내 괴롭힘을 호소하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암시하기도 했다. 고성과 자만을 위한 지나친 차별적 복지 혜택도 문제로 제기됐다. 최근에는 카카오가 근로감독 결과 노동법 위반 사항들이 무더기 적발됐다는 보도도 있었다.

카카오와 네이버는 취업 준비생들 사이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직장 중 하나다. 새로운 시장을 창출해 압도적 산업계 지위를 굳힌지 오래고 국내 최고의 기업으로 꼽힌다. 플랫폼 특유의 ‘락인효과'를 발휘해 진출 분야를 확장하면서 영향력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이러한 직장에서 반노동적이고 전근대적인 직장 문화가 만연했다니 충격이 아닐 수 없다.

업계 직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직장으로서의 네이버와 카카오 내에서 혁신, IT, 스타트업 특유의 강점인 조직 내 자율성은 퇴색하고, 보통 기업들의 경직되고 상명하복적 문화는 빠르게 닮아간지 오래다. 특히 네이버에는 업무 과정에서 상당한 우울감과 피로감을 느끼는 직원들이 곳곳에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국내 최고 직장으로 간주돼 이직을 결정하기 꺼려지는 구조 속에서, 강압적 문화를 내면화하다가 우울감을 앓는 직원들이 있다는 의미다.

겉으로 보기에 네이버와 카카오는 파격적으로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보유하고 있는 듯했다. 네이버는 수평적인 조직 문화를 강조하면서, 임원급 외에는 ‘님'으로 호칭을 통일했다. 카카오도 서로의 이름을 영어로 부르고 직급을 생략하는 호칭을 부른다. 기존 한국 전통 기업에서 쉽사리 상상하기 어려운 모습이다.

책 ‘네이버는 어떻게 일하는가'(신무경 저)를 보면 네이버에는 의견을 권위로 압도하지 않아야 혁신이 지속 장려될 수 있다는 창업자의 믿음이 사내 문화 곳곳에 묻어있다. 직원들 직군과 연차에 관계없이 아이디어와 의지만 있다면 비즈니스 어워드, 엔지니어링 데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신규 아이템을 제안하고 이를 적극 주도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정작 직원들은 블라인드를 통해 강고한 서열문화와 줄서기 관행을 폭로한다. ‘님'이라는 말만 붙일 뿐, 다른 기업문화와 크게 다를 게 없다는 의미다.

네이버 창업자 이해진은 2016년 라인이 미국과 일본에서 동시 상장을 하는 날 기자간담회를 열고 자신의 경영 이념에 대해 ‘비전이 없는 것이 곧 경영 철학'이라고 말했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변화속에서 비전 제시는 곧 틀 제시로 변화 대처가 어렵다고 그는 생각했다. 일견 맞는말인듯 싶다. 그러나 이제는 커버린 조직내에서는 최소한도의 비전이 필요해 보인다. 내부 직원들의 행복까지는 아니라도 기업 성장과 혁신 문화를 저해하는 내부 압력을 지속 감시하고 견제해야 하는 일 만큼은 최소한의 비전으로 가다듬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