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 재계약 후 종료되는 내년 1월 개시 ‘가닥’

KB국민·하나·우리 등 3대 금융지주가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부 의견을 모은 가운데 우리은행이 국내 가상자산 사업자 빗썸과 실명확인 입출금 계정(이하 실명계좌) 발급에 무게를 두고 제휴 논의를 진행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우리은행은 빗썸과 제휴를 통해 디지털 자산 신사업을 적극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빗썸은 우리은행과 협력으로 모바일 간편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받아 고객을 늘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4일 복수의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우리은행과 빗썸은 실명계좌 제휴 계약을 비롯해 디지털 자산 사업을 공동 추진하는 방향으로 협의를 진행하고 있다. 우리은행 디지털·IT 관련 부서가 중심이 돼 핵심 임원진을 설득하면서 내년 1월 쯤 실명계좌를 발급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전언이다.

업계 관계자는 "우리은행과 빗썸이 실명계좌 제휴를 논의하고 있다"며 "꽤 긍정적인 방향으로 이야기가 오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은행권에서 가상자산 거래소와 관련 사업에 관심이 많아 다양한 방식과 안건으로 논의가 오가는 분위기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도 "우리은행이 빗썸에 사업을 제안하면서 실명계좌를 발급해 줄 수 있다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안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우리은행 측은 빗썸과 논의 단계에 있으며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조심스럽게 입장을 밝혔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디지털 자산 영역은 매우 중요한 분야다"라며 "커스터디 사업을 포함해 빗썸과 많은 논의를 진행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라고 말했다. 다만 "내부적으로 검토 단계다"라며 "아직 공식적으로 확정된 내용은 없다"고 답했다.

반면 빗썸 관계자는 "현재 농협과 계약연장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며 "우리은행 계약은 사실무근이다"라고 밝혔다.

디지털 자산 사업에 공들이는 우리은행…빗썸과 윈윈 효과 노려

관련업계는 양사가 협력하게 된 배경으로 서로의 니즈가 충족됐다고 분석했다.

우선 우리은행의 경우 올해 1분기 비은행권 포트폴리오 확충으로 당기순이익이 전년동기 대비 29.6% 가량 개선됐다는 평가가 나오는 만큼, 향후 신사업 확대 기조가 이어질 것이라고 전망한다. 여기에 블록체인과 가상자산 사업이 적지 않은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실제 우리은행은 자체 블록체인 플랫폼 구축에 나서며 디지털 자산 사업에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최근에는 한국은행이 주도하는 중앙은행발행 디지털화폐(CBDC) 모의실험에 관심을 보이는 한편, 해당 플랫폼에 분산신원인증(DID) 모바일 대출자격 서비스도 구현할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빗썸은 우리은행과 제휴로 고객 확대 효과를 기대하는 눈치다. 업비트와 케이뱅크의 조합이 자극제가 됐다는 분석이다. 현재 빗썸은 농협과 실명계좌 계약을 맺고 있다. 지난해까지 업비트와 빗썸의 거래규모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들어 양측의 거래량은 크게 벌어졌다.

관련업계에 따르면 업비트의 하루 거래량은 7조원에 달한다. 반면 빗썸의 일간 거래량은 1조원대를 웃돈다. 실명계좌 입출금 규모는 케이뱅크 43조8000억원, NH농협은 19조6000억원이다.

업계는 케이뱅크의 비대면 서비스와 간편 입출금 뱅킹을 업비트 거래량 증가의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즉 우리은행과 새롭게 협력해 모바일 간편 서비스 플랫폼을 제공받고 신규 고객을 확보하겠다는 복안을 뒀다는 분석이다. 이 경우 우리은행도 반사이익을 거둘 수 있다. 올해 1분기 케이뱅크가 업비트로부터 받은 수수료 수익은 무려 50억원이 넘는다. 농협이 빗썸에서 거둔 13억원의 세배 규모다. 우리은행과 빗썸이 복안대로 고객을 확보하게 되면 업비트 만큼의 수수료 수익을 챙길 수 있게 된다.

지주 발표와는 다른 행보…정부 기조 변화에 주목

업계는 우리금융지주와 우리은행 간 온도차도 주목해야 할 대목으로 꼽는다. 앞서 우리금융지주는 5월 23일 KB국민·하나금융지주와 함께 자금세탁위험이 높은 가상자산 거래소에 실명계좌를 발급하지 않는 방향으로 내부 의견을 모았다고 밝혔다.

이에 일각에서는 우리은행이 지주사 방침과 무관하게 사업을 추진하는 이유를 두고 여러 해석을 내놓는다. 이미 발표 전부터 빗썸과 실명계좌 제휴를 비롯해 공동사업 추진을 논의했을 가능성이 가장 힘을 얻는다. 또 지주사 고위 임원이 가상자산 사업자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언론에 밝혔거나, 지주사를 비롯해 우리금융그룹이 사업 계획을 선회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여기에 정부의 기조 변화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분석도 있다. 국내 시중은행 관계자는 "금융위원회가 정보보호관리체계인증(ISMS)을 받은 20개 가상자산 거래소와 신고제 관련 면담을 진행하는 등 정부차원에서도 긍정적인 기류가 흐른다"며 "분위기가 다소 완화되면 가상자산 거래소 모시기 경쟁이 치열해 질 것이다"라고 의견을 냈다.

그는 이어 "9월 25일까지 신고수리를 받은 거래소가 많지 않을 경우 금융위원회가 힘을 잃을 가능성도 있다"며 "국회가 이를 근거로 등록제 시행을 추진할 수 있기 때문에 정부도 다급하긴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한편 빗썸은 가상자산 사업자에게 자금세탁방지의무를 부과하는 특정금융법 시행에 따라 농협으로부터 실명계좌 재계약을 위한 위험평가 실사를 받고 있다. 심사를 통과할 경우 실명계좌 제휴 계약은 내년 1월까지 연장된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