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대통령, 말로만 백신주권 강화
올해 지원금, 제약사 한 곳 임상도 무리
총체적 백신 지원책 세워야 확보 가능

국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속도를 내는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이 ‘백신주권’을 강조했다. 백신 수급 문제로 그간 놓쳐온 백신 개발·생산·유통 역량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선진국 대비 백신 개발 환경 및 역량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만큼, 현실성 없는 발언이라고 입을 모은다. 총체적인 백신 개발 지원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설명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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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백신 개발될까…성공 가능 제품 선구매

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은 최근 청와대에서 주재한 3차 코로나19 대응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서 "백신주권을 반드시 확보하겠다"며 "3분기부터 임상3상에 들어갈 것으로 예상되는 제품 중 성공 가능성이 높은 제품을 선구매하는 등 국내 백신 개발 지원 강도를 높이겠다"고 말했다.

현재 SK바이오사이언스와 유바이오로직스, 제넥신, 진원생명과학, 셀리드 등 5개 기업이 백신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이 중 일부 기업은 7월부터 단계적으로 임상3상 진입을 목표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국내 백신 생산 역량도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그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글로벌 백신 파트너십 구축도 속도감있게 추진하겠다"며 "한미 간 후속 협의를 본격화해 국내 백신 생산 역량이 극대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美와 차이나는 백신주권…대책 세워야"

관련업계는 문 대통령의 발언에 의문을 표한다. 업계가 느끼는 현실은 대통령의 발언과 다소 동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한미 정상회담으로 mRNA 백신 위탁생산 기술력을 강화할 발판은 마련됐지만, 정작 국내 백신 개발에 대한 정부 정책은 미국 대비 한참 모자르다는 것이 이유다.

업계 전문가들은 우선 백신 개발 성패 여부와 관계 없이 지원금부터 확대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미국의 경우, 백신 개발이 성공할 지 아무도 모르던 코로나19 초기 ‘백신 개발 초고속작전(Operation Warp Speed)’을 통해 제약사에 조 단위의 지원금을 쏟아부었다 그 결과 1년만에 주권을 확보했다. 반면 우리나라는 해외 백신에 의존하다가 뒤늦게 개발에 나섰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금에도 차이가 난다. 정부는 올해 코로나19 백신 임상 지원에 687억원의 예산을 책정했다. 이는 그간 미국 정부가 화이자(2조원)와 모더나(4조원), 아스트라제네카(1조원) 등 해외 제약사에 수십 조원을 투자한 것에 비하면 새발의 피 수준이라는 지적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올해 책정된 백신 예산(687억원)은 한 기업이 임상을 제대로 실행하기에도 부족한 규모다"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정부가 선구매 카드를 꺼내 든 것에 아쉬움을 나타내며 "지원을 강화하겠다는 입장이 미국처럼 코로나19 초기때 이뤄졌다면 임상 속도가 훨씬 빨랐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지속적인 지원을 통해 백신 원천 기술을 확보하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장기적 관점에서는 인재 양성을 통한 백신 개발 역량을 끌어올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내 한 대학병원에서 임상시험을 담당하는 한 관계자는 "선진국 뿐 아니라 러시아와 중국도 백신을 자체적으로 만들어 각국에 지원하고 있다"며 "한국에선 백신 개발 인재가 부족한 상태다. 관련 인재 양성을 위한 인프라 마련 등 대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연지 기자 ginsburg@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