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전기차 시장을 이끄는 국내 배터리 제조사는 정부를 향해 첫째도 둘째도 인력이 중요하다는 한 목소리를 냈다. 중국 업체들은 정부 지원을 등에 업고 대약진 중인데, 한국 역시 장기적 관점에서 배터리 인력을 양성하는 동시에 인력 유출을 차단해야 현재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핵심 인력 부족은 업종을 불문하는 문제로 대두됐다. 반도체 굴기를 선언한 중국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를 비롯한 주요 기업에 종사하는 인력 빼가기에 혈안이 돼 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수시로 경력직원을 채용하며 인력 수혈에 만전을 기하는 중이다.

배터리 기업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중국 최대 부동산그룹 ‘헝다(恒大)’는 2019년 초 배터리 기업을 설립하며 8000명쯤의 글로벌 인재를 채용했다. SK이노베이션 전 배터리연구소장과 LG에너지솔루션 사장, 삼성SDI 주요 임원이 헝다 배터리 회사의 요직을 차지했다. 800명쯤인 R&D 인력 중 상당 수는 K배터리 3사 출신인 것으로 파악된다.

2017년 설립된 스웨덴 배터리 업체 노스볼트의 R&D 분야에서도 한국 인재가 중추적 역할을 맡고 있다 노스볼트는 자사 홈페이지에 "30명 이상의 한국인과 일본인 기술자가 근무 중이다"고 소개했는데, 기술 유출 논란이 일자 해당 안내문을 삭제했다. 노스볼트는 세계 최대 완성차 업체 폭스바겐의 배터리 내재화 핵심 파트너로 참여하며 K배터리를 위협하는 존재로 급부상했다.

4월 양사간 합의로 마무리 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 간 영업비밀 침해 소송의 본질 역시 인력 부족에 따른 인재 유출 논란이다.

전기차용 배터리는 매년 빠르게 성장 중이지만, 인력 자원은 턱없이 부족하다. 시장조사업체 IHS마킷에 따르면, 글로벌 리튬 이온 배터리 시장 규모는 매년 25%씩 성장해 2025년 1600억달러(178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다. 올해 슈퍼 사이클이 예상되는 메모리 반도체(2025년 166조원)를 뛰어넘는다. 배터리 인력에 대한 전망에 대해 시장 규모 만큼 확대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전망이 주류다.

전영현 삼성SDI 사장(한국전지산업협회 회장)은 9일 열린 ‘인터배터리’ 행사에서 "이차전지 산업이 성장하고 있지만 인력은 부족하다"며 "인력양성을 위한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는데, 그 이유 역시 여기에 있다.

현재 K배터리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배터리 기술력은 갖춘 것은 기업 스스로 경쟁력 있는 인력을 키워냈기에 가능했다. 하지만 배터리 산업 규모가 급격히 팽창하는 미래에는 기술 확보와 인력 양성 모두 기업이 책임지기 어렵다. 정부와 배터리 분야 전후방 기업이 함께 대응해야 글로벌 경쟁에서 이길 수 있다.

적어도 국내 배터리 산업에서는 ‘인력 제로섬 게임’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 문승욱 산업부 장관은 7월 ‘K-배터리 전략’을 발표하는데, 탁상공론식 공염불아 아니길 바란다. K-배터리 전략에 장기적 인력 양성과 인력 유출 방지 방안 등 과감한 지원책이란 평가를 받기를 기대한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