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언어·인류학자인 에드워드 사피어는 한 사회의 언어습관 위에서 사람들이 세상을 이해하는 방법이 결정된다고 말했다. 하나의 사건이 어떻게 정의되는지에 따라 그 사건은 한 때의 사고로 잊혀질 수도, 혹은 사회를 더 나은 방향으로 변화시키는 사건으로 기능하게 될 수도 있다.

최근 발생한 네이버 개발자의 안타까운 사건을 두고 대응에 나선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 방식은 에드워드 사피어의 지론이 그대로 묻어났다. 이들의 ‘말하기’ 방식은 기존의 전통적인 노동조합 방식과 결이 달랐다. 이들은 문제를 알리기 위해 전투적인 태도로 강력한 단어를 쏟아내지 않았다. 명확한 조사 자료로 자신할 수 있는 주장만을 간결하게 전달했다. 이들은 네이버 문제의 본질은 특유의 과도한 상명하복 구조와 지나친 권력 쏠림이라고 일관되게 이야기했다. 그 결과 안타까운 동료의 사건은 내외부로부터 큰 파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으며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단초를 마련했다.

그 배경은 꼼꼼하고 철저히 진행된 조사 덕이다. 6월 초 네이버 본사 앞에서 열렸던 중간조사 기자회견에서, 그들은 동료의 죽음을 헛되이 보내지 않으려는 노력의 결과물을 대중에 공개했다. 현직 직원들이 겪고 들었던 크고 작은 문제부터, 회사를 떠난 동료들의 증언까지 샅샅이 조사해 기자회견을 통해 공유했다.

이 과정에서 네이버 노동조합 공동성명은 조사 결과 발표에서 동료 개발자의 극단적 선택 본질을 ‘업무상 재해’로 정의했다. ‘직장 내 괴롭힘’이라는 규정을 통해 이를 특정 개인의 폭력 사태로만 이해되지 않도록 견인했다. 노조는 "회사가 괴롭힘을 충분히 인지했지만 이를 방조해왔다"고 주장했다. 그러므로 이는 업무상 재해이며, 하급 직원을 향한 괴롭힘이 일어날 수 있는 권력 비대칭이 사건의 본질이라고 봤다. 노조는 그 증거로 회사와 경영진이 문제를 충분히 인지하고도 묵인하고 방조한 증언을 내놨다. 인사팀 차원에서 관련 문제를 인지했던 증거도 갖췄다.

언론 대응 수준도 높았다. 기자들과 질의응답에서 노조는 단정했지만 단호했다. 자체 조사와 증언을 통해 수집한 자료와 근거를 바탕으로 드러난 사실만 문제로 꼽았다. 지나치게 ‘센' 문장으로 상황을 앞서 과장하지 않았다.

그 결과 본질이 달라졌다. 단순히 개인의 폭력 문제로 마무리될 뻔한 사건을 우리 사회가 다시 조직의 문제와 그 본질을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단지 상사의 모욕뿐이었다면 당사자가 그러한 선택을 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C 레벨 인사가 관여된 압박이, 돌파구가 없다는 지나친 압박을 느끼게 했을 수 있다. 이직하려고 해도 자신의 레퍼런스에 대한 명확한 크로스체크도 어려울 수 있다는 좌절감을 느꼈을 수도 있다. IT업계는 좁다면 상당히 좁은 곳이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안타까움을 표하면서 이 사건이 단순한 ‘직장 내 괴롭힘'에만 머물러선 안 되는 이유를 설명했다.

직장 내 곪은 부분을 햇볕에 쬐이고 바람이 통하도록 만들어 문제 개선하는 노조의 역할이 어느 때보다도 중요해 보인다. 최고의 직장 중 하나인 네이버가 스스로 문제를 온전히 돌이켜보고, 문제적 관행들을 뿌리째 개선하는 전환점을 만들어내길 바란다. 그래야 같은 문제의 반복을 막아내고 건강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 문법을 만들어나갈 수 있을 것이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