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TV용 액정표시장치(LCD) 패널 생산을 내려놓지 못한다. 이들 기업은 ‘탈LCD’를 적극 추진했지만, 형님 격 계열사인 삼성전자와 LG전자의 요청에 사업 철수를 연기 중인 상태다. 단기 수익은 높아지더라도, 중장기로는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전환을 가로막는 방해 요소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28일 디스플레이 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충남 아산캠퍼스 등에서 LCD 패널을 생산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대형 LCD 패널 전체 물량 중 20~30%를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공급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주선 삼성디스플레이 사장은 5월 말 LCD 사업부 직원들에게 이메일을 보내 "회사 이익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2022년 말까지 LCD 생산을 지속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라고 밝힌 바 있다.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생산 공장 전경 / 삼성디스플레이
충남 아산 삼성디스플레이 생산 공장 전경 / 삼성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도 경기도 파주의 TV용 LCD 생산라인을 추가 자원 투입 없이 가동하고 있다. 당초 생산 계획은 2020년까지였지만, LG디스플레이는 재무 상황과 고객사 사정을 고려해 LCD 생산을 당분간 지속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업황이 긍정적인 상황에서 당장의 캐시카우(수익창출원)를 버릴 이유가 없고, 부족한 현금 확보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의 선택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지 않은 배경 중 하나로 지목된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19년 10월 차세대 패널인 QD디스플레이 양산 계획을 발표하고 총 13조원의 투자를 추진 중이다. 현재까지 4분의 1 수준인 3조원쯤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샘플을 받아본 삼성전자는 QD디스플레이 탑재 TV가 생산능력과 수율이 떨어져 주력으로 판매하는 것을 망설이고 있다. 삼성디스프레이는 2022년부터 QD디스플레이 추가 투자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시장 수요가 불확실할 경우 계획을 틀 가능성도 제기된다.

LG디스플레이 파주 사업장 전경 /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파주 사업장 전경 / LG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도 사실상 무주공산인 대형 OLED 시장에서 적기 투자에 나서지 못해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LCD 생산으로 힘을 분산해 OLED로 전환 동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것이다. 파주 10.5세대(2940㎜ x 3370㎜) OLED 패널 양산 일정을 기존 2022년에서 빨라도 2025년 이후로 연기한 것이 대표적인 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삼성디스플레이는 선행 투자를 통해 과거 LCD 불황기가 찾아왔음에도 세계 패널 제조사 중 유일하게 조단위 영업이익을 달성했다"며 "LG디스플레이도 10.5세대 OLED 투자를 예정대로 진행했다면 양산 시점부터는 안정적 마진을 확보해 대형 OLED에서 절대적인 강자가 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디스플레이 업계에서는 하반기부터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가 LCD 사업에서 손을 떼는 절차를 밟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코로나19 백신접종 확대에 따라 TV수요가 둔화하고 LCD 가격 상승세도 주춤할 것이란 분석 때문이다.

하지만 삼성전자와 LG전자가 LCD 가격 폭등으로 홍역을 치른 만큼, 계열사의 LCD 완전 철수를 바라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예측이 어려운 디스플레이 시장 대응과 중화권 패널 기업과 협상력을 유지하려면 LCD를 조금이라도 생산해줄 ‘믿을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디스플레이 한 관계자는 "가격 결정권을 손에 쥔 중국 업체들의 물량 공세가 지속되는 한 LCD 시장을 단번에 넘겨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국내 고객사의 가격 협상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고, 당분간 LCD 생산 비중을 적절히 조절하며 차세대 패널로 연착륙하는 것이 최선이다"라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