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자산 거래소의 소수 독점이 불가피하다’는 취지의 은성수 금융위원장 발언이 논란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 1일 국회 정무위원회에서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은 "업비트 점유율이 작년 41%였다가 현재 80%에 육박한다. 가상자산 거래소 정리가 계속된다면 업비트의 점유율이 90%를 넘어설 수 있다"며 이에 대한 대책을 물었다.

은 위원장은 대책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자금세탁 방지 등 국제기준 준수를 위한 불가피한 결과라는 입장을 강조했다. 독점·불공정 소지가 있더라도 사업자 신고수리 요건에 대해 엄격한 입장을 고수하겠다는 것이다. 시장은 은행으로부터 실명계좌를 발급받은 4대 가상자산 거래소를 제외하고 추가 발급이 어렵다는 취지로 해석했다. 결국 주요 5대 시중은행들이 신규 계좌 발급 논의를 중단키로 하면서 중소 가상자산 거래소들의 진입 장벽이 높아졌다.

금융당국 수장의 발언에서 정책 부작용에 대한 어떠한 고민을 찾을 수 없다는 점이 못내 아쉬운 대목이다. 그에게 가상자산 거래소는 오로지 금융당국에 업무 부담을 안기는 위험 요인에 불과하다는 인상이다.

독점 문제가 공정거래위원회 소관이기 때문에 은 위원장의 발언을 문제 삼기 어렵다는 반론도 있을 수 있다. 다만 금융위가 지난 5월부터 가상자산 사업자를 맡아 관리하기로 하고 투자자 피해를 줄이기 위해 특별단속에 나서는 배경을 보면, 은 위원장이 독점을 방치하고 있다는 지적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 없다. 만약 예금·대출이나 증권 브로커리지(개인위탁매매)의 시장점유율이 한 업체에 집중돼 있다면 은 위원장이 과연 이를 두고 볼지도 의문이다.

은성수 금융위원장 / 조선DB
은성수 금융위원장 / 조선DB
증권시장으로 치면 업비트 등 가상자산 거래소는 한국거래소와 예탁결제원, 증권회사를 한 데 합친 것과 같다. 견제와 감시 기능이 전무한 실정이다. 단순히 국내 증권사 한 곳에 거래량이 쏠리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게다가 규제 사각지대에서 해킹과 서버장애, 허위·가장매매 위험까지 도사리고 있다. 업비트에 문제가 생기면 가상자산 시장의 80%가 피해를 입을 수 있는 상황이다.

가상자산 업계 상황도 독점의 위험을 키운다. 한국블록체인협회가 업비트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회원사들의 뒷말은, 사실 유무를 떠나 업비트의 시장 장악력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업비트에 대한 비판과 감시 기능을 놓아버리고 오로지 칭찬일색으로 일관하는 블록체인 전문 매체도 눈에 띌 정도다.

4대 거래소 중 가장 나이가 어린 업비트는 정부의 방치와 시장의 탐욕, 시장참여자들의 한탕주의로 ‘골리앗’이 돼가고 있다. 이 가운데 은 위원장이 던진 메시지는 매우 위험해 보인다. 의도하지 않았겠지만 은 위원장은 독점의 부작용을 묵인하면서 업비트의 지원군이 돼버렸다. 금융위가 가상자산 업체들의 자금세탁 방지에만 몰두한 나머지 독점이 가져올 수 있는 폐해를 너무 소홀히 여기는 건 아닌지, 더 늦지 않게 되돌아볼 때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