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가 서로에게 채찍을 때리며 "똑바로 일해라 응?"을 외치며 갈구면서 나선형으로 발전하는 모습은 기이하면서 초현실적이다. 그 누구도 자신이 현재 있는 위치에 만족하지 못하면서 불만과 불안을 토로하고 변신하기 위해 노력하거나 시스템의 빈틈을 찾아 공략하면서 사회를 가만히 있지 못하게 만들었다.

회전력을 통해 날개없이 안정성을 획득하는 탄두나 미사일처럼 대한민국은 정신없는 회전을 통해 나름대로의 방향성과 적응력을 키워온 셈이다. (물론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튕겨나가고 상처입고 스러져갔다...ㅠㅠ)"

최준영 법무법인 율촌 전문위원이 지난 5월말 우리나라의 백신 접종 속도가 급속히 높아지는 국면에서 페이스북에 쓴 글의 일부분이다. 최 위원은 "잠깐의 뛰어남과 역할을 토대로 우월적 지위나 영향력을 갖춘 포지션에 있는 사람과 집단은 일시적으로 있지만 대한민국 국민은 그 효용이 다하면 언제나 가차없이 개인과 집단을 끌어내려 내동댕이쳤다"며 우리나라를 ‘영웅 없이 만든 영웅적 국가’라고 칭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이 모여 살면서 어린 시절부터 치열한 경쟁을 체험한다. 경쟁에서 낙오하지 않으려고 대부분 사람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분투한다. 자신 뿐 아니라 자녀들까지 그렇게 분투하며 살기를 바란다. 그런 삶의 방식이 체질화 돼 있다.

우리나라는 섬유, 의류, 식품 등 경공업에서부터 전자, 자동차, 조선, 화학 등 중화학공업 그리고 통신, 반도체, 항공, 우주 등 첨단산업까지 골고루 발달했다. 이처럼 다양한 산업포트폴리오를 갖춘 나라는 거의 없다. 또 언제부터 바이오 산업이 그렇게 대단해졌으며 언제부터 K-POP과 한류가 세계를 휩쓸게 됐는가. 신산업의 성장, 발전 속도 역시 매우 빠른 것이다. 2015년쯤까지만 해도 실리콘밸리 생태계를 그토록 부러워했는데,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정책과 문재인 정부의 ‘혁신성장’ 정책을 거치면서 나름 훌륭한 창업·벤처·투자 생태계가 구축됐다.

우리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며 분투한 결과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짧은 시기에 압축적으로 달성했던 것처럼 사회의 변화도 매우 역동적이다. 1993년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으로부터 시작된 직장 내 여성 인권 신장의 역사는 그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많은 변화를 이뤄냈다. 서구 선진국에서 벌어졌던 미투(Me Too) 운동이 거의 비슷한 형태로 강도 높게 진행된 것도 아시아 국가 내에서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지난 2일 한국의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했다. 1964년 UNCTAD가 설립된 이래 개도국 그룹에서 선진국 그룹으로 이동한 사례는 한국이 처음이다. 한국이 개도국을 졸업해 선진국에 진입한 최초의 국가라고 유엔이 공인한 것이다.

이는 경제, 산업구조, 교육, 기대수명 등 외형적 또는 물질적 측면에서 인정받은 것일 뿐이다. 우리는 내면적 또는 정신적 측면에서는 여전히 개발도상국 수준이다.

선진국 수준은 어떤 것일까. 사견으로는 우선 아무리 못 사는 사람이라도 최소한 어느 정도 수준의 의식주가 해결되는 사회여야 한다. 또 잘 살든 못 살든, 돈이나 사회적 지위에 따라, 그리고 직업 성별 학력 인종에 따라 차별 받지 않고 당당하게, 비굴하지 않게 살 수 있는 수준이면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상호 존중과 배려의 자세, 문화적 포용성과 다양성 그리고 관용과 같은 소프트파워를 갖춰야 가능한 일이다.

최근 서울대학교에서 청소노동자로 근무하다가 사망한 50대 여성이 고된 노동과 직장 내 갑질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와 비슷한 일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여전히 벌어지고 있다. 앞뒤 재지 않고, 아래 사람은 무조건 마구 굴리고 갈궈야 한다는 무식한 개발도상국식 조직문화가 문제라고 생각한다.

글 첫머리의 표현대로 우리나라는 탄두나 미사일처럼 정신없는 회전을 통해 나름대로의 방향성과 적응력을 키워오면서 그 와중에 많은 사람들이 튕겨나가고 상처입고 스러져갔다. 그러나 이제는 튕겨나가고 상처입고 스러져가는 사람을 최소화하는 데 진력을 다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