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이 12월부터 본격화하는 가운데 네이버·카카오·페이스북 등 주요 플랫폼의 난감스러운 표정이 역력하다. 해당 법안이 시행되면 이들 사업자는 사용자가 업로드하는 영상의 불법 촬영 여부를 선별하고 이를 사전에 차단하는 기술을 적용해야 하는데, 이로 인해 콘텐츠 전송 속도가 현저히 저하될 수 있어 사업에 악영향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픽사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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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n번방 방지법(전기통신사업법 및 정보통신망법 개정안) 중 사업자들의 ‘기술적 관리적 조치 적용' 의무를 포함한 시행령이 오는 12월 10일부터 적용된다.

해당 조치는 불법 촬영된 콘텐츠가 사이트에 게시될 수 없도록 하는 것이 골자다. 플랫폼 사업자는 불법 촬영된 동영상을 ‘필터링'하는 기술을 의무 적용해야 한다. 일평균 이용자 10만명 이상 또는 연평균 매출액 10억원 이상 사업자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온라인커뮤니티·대화방·검색 서비스 등을 제공하는 부가통신사업자가 모두 포함되며, 네이버·카카오·페이스북·텔레그램 등 주요 플랫폼이 여기에 해당한다.

‘속도 저하'로 서비스 질 하락 우려

방송통신위원회는 플랫폼 기업이 스스로 필터링 기술을 개발한 뒤 정부의 성능평가를 통과해 ‘셀프 적용'하거나, 전자통신연구원(ETRI)이 자체 개발한 기술을 적용하는 것 중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5000만원 이하 과태료나, 미조치 횟수에 따라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 벌금이 부과한다.

해당 사업자 입장에서는 어느 쪽도 선택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한 상황이다. 업계는 기술적으로 실현이 어려운 기술을 인위적으로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기업의 사업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조치라고 주장한다.

스스로 필터링 기술을 개발해 이를 셀프 적용할 경우 자칫 문제가 생길 경우 그 책임을 모두 뒤집어 쓸 수 있어 선뜻 도입하기가 어렵다.

ETRI가 개발한 기술을 적용할 경우에는 서비스의 속도 저하가 불가피하다고 우려한다. 업계 일각에서는 ETRI가 개발한 기술을 적용할 경우 이용자들의 영상 콘텐츠 전송·공유 속도가 최대 3-5초까지 지연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ETRI 기술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 촬영'이라고 판단한 ‘DB값'(=’DNA값',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불법촬영영상물로 확인한 영상의 특정 정보값을 의미) 리스트를 기반으로, 영상을 즉시 필터링해 해당 영상이 포함되면 업로드를 중단시킨다.

권세화 인터넷기업협회 정책국 실장은 "초고속 시대에 이용자들은 1초도 느릴 수 있다고 판단한다"며 "영상서비스 게재가 3~5초까지 지연된다면 이용자는 해당 서비스를 쓰지 않고 이탈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대다수 플랫폼 사업자는 ETRI 기술을 탑재한 순간 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고 덧붙였다

규제당국 내부서도 속도 문제 인정

관련 기술을 개발한 ETRI와 방송통신위원회는 말을 아꼈다. 다만 서비스 단계가 늘어날 수록 소요되는 시간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과 플랫폼 사업자들의 우려가 현실화될 수 있다는 데는 부정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ETRI 관계자는 "불법 영상을 기술로 식별하는 것은 0.02초~0.05초 정도에 불과하다"며 "다만 업체에서 어떤 서비스 단계까지 포함해서 시간을 측정하는지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ETRI 관계자는 "관련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도 긍정적으로 보지는 않고 있다"고 밝혔다.

방송통신위원회 관계자는 "업로드 영상이 순간적으로 동시에 몰리면 로드 시간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방통위 역시 이 같은 사업자 우려를 인지하고, 고민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방통위 관계자는 "해당 조치 시행을 앞두고 사업자 의견 청취 회의를 여러 번 진행했다"며 "사업자가 우려하는 부분을 충분히 들은 만큼 해결점을 고민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