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이후 여러 차례 발의와 폐기를 반복했던 차별금지법이 다시 발의되었다. 발의에 참여한 의원들은 물론 여권의 대권 주자들이 지지를 천명하고 있다. 차별금지 항목도 점점 늘어 20여 가지에 달하고 있다. 장애인단체를 비롯한 시민단체의 지지와 더불어 국민청원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국가 인권위원회에서도 법 제정을 촉구하고 있어 이번 회기 내에 통과될지 초미의 관심사이다.

이 법이 통과되고 나면 차별한 사람에게는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으며,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각종 법률과 정책에 차별 금지를 반영해야 하며, 행정〮입법〮사법부는 차별 시정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여 시행해야 한다.

인권을 위해 헌법 가치인 평등권을 지키도록 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그러나 법만 제정하면 차별이 해결될 것 같은 착각을 하지 말아야 한다. 차별에 대한 좀 더 명확한 정의가 내려져야 한다. 차별과 차이에 의한 차등은 어떻게 구분할 것인지 구체적인 지침이 있어야 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의 여러 시스템은 경쟁과 차이를 근간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칫 기업경영 시스템의 대혼란을 겪을 수 있다.

기업에서는 채용단계에서부터 성별, 나이, 인종, 피부색과 같은 인권을 무시하는 차별은 하지 않더라도 맡을 일에 요구되는 능력을 판단하기 위해 학력을 포함한 객관적인 기준으로 구분하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차별로 여겨지지 않도록 하려면 일의 자리마다 요구사항이 구체적으로 제시돼야 한다.

과거에는 사회 여러 분야에 고졸들이 담당하는 영역이 있어 그들만을 대상으로 직군을 구분하고 선발해 왔다. 금융권의 창구직원을 비롯해 철도, 통신, 전기, 수도 등의 인력을 교육하는 고등학교도 따로 있었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차별적이라고 해 기업에서 고졸만을 위한 직군을 없앴다. 그 결과 그 자리를 다 대졸들이 차지하게 되고 대학졸업자를 양산하는 사회로 바뀌는 결과를 낳은 것이다.
이렇듯 자칫하다가는 차별금지 때문에 보호하고자 하는 대상들의 설 자리 자체를 없애거나 사회적인 왜곡 현상을 야기할 수 있다. 법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제도의 설계가 훨씬 더 명확하고 구체적이어야 한다.

1991년부터 시작된 장애인고용촉진법도 마찬가지이다. 일정 규모 기업의 장애인고용 비율을 3% 이상으로 법제화하면 장애인고용이 대폭 늘어날 것으로 예상했지만 현실에서는 거리가 멀다. 장애인을 몇 명씩 고용해 감당하기 어려운 기업들은 고용보다는 부담금을 택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러니 법으로 규정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장애인들이 일할 수 있는 작업장을 만들고 그런 기업을 발굴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선언하듯이 차별 금지하는 항목들을 늘리기보다는 애매한 것들은 제외하고 정말 인권의 보호에 결정적인 것부터 시행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예를 들어 은행, 신용카드, 유통회사 회사들이 고객을 학력, 직업, 재산은 물론 여러 기준으로 차별하고 구분하는 것은 전 세계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고객관리 시스템의 기본이다. 여기에 빅데이타까지 동원되면 고객을 훨씬 더 세세하게 구별하고 차등적인 대우를 하게 될 것이다.

차별을 강조한 나머지 발생할 역차별도 없어야 한다. 차이를 인정받지 못하는 역차별, 과도한 금지 때문에 지금까지 당연시 여겨졌던 행위들에 대한 역차별 등 민감한 내용은 걸러져야 한다. 그러니 법으로 차별하지 말라고 만 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수 있고 없는지 제시해야 한다.

차별에 대한 해석이 모호해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이 되지 말아야 하며 너무 광범위하게 거의 모든 차별을 악으로 규정해 발본색원(拔本塞源)하듯 하지 말아야 한다. 따라서 차별금지법을 통과시키려면 不要不急한 차별을 골라내어 혼란을 줄이는 것도 현명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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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진 워크이노베이션랩 대표는 KT 사장을 지냈으며 40년간 IT분야에서 일한 전문가다. '김홍진의 IT 확대경’ 칼럼으로 그의 독특한 시각과 IT 전문지식을 통해 세상읽기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