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26일 새로운 노트북 제품인 ‘갤럭시 북 고(GO)’를 58만9600원에 출시했다. 14인치 화면 크기에 4G LTE 네트워크를 지원, 어디서든지 인터넷에 접속 가능한 ‘연결성’을 장점으로 내세운 제품이다.

그런데, 삼성전자는 이 제품의 마케팅 콘셉트로 ‘실속형 노트북’을 강조한다. 같은 화면 크기의 일반 노트북보다 한 수 처지는 사양과 성능에도 불구하고, 거의 60만원에 육박하는 가격에 삼성전자가 내세운 ‘실속형 노트북’이라는 타이틀이 어울리는지 의문이다.

갤럭시 북 고는 CPU로 ARM 기반의 퀄컴 스냅드래곤 2세대 7c 프로세서를 탑재했다. 즉, 지난 2019년 선보인 삼성의 첫 ARM 프로세서 기반 노트북이자 LTE 연결 기능을 갖췄던 ‘갤럭시 북S’의 후속 모델인 셈이다. 다만 고급형(?) 모델로 선보였던 갤럭시 북S와 비교하면 세부 사양은 오히려 떨어진다. 메모리와 저장공간이 각각 4GB와 128GB로, 갤럭시 북S의 절반 수준이다.

거의 60만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출시된 삼성 갤럭시 북 고 / 삼성전자
거의 60만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출시된 삼성 갤럭시 북 고 / 삼성전자
문제는 갤럭시 북 고가 안드로이드나 크롬 OS가 아닌 윈도10을 운영체제(OS)로 탑재한 제품이라는 점이다. 정확히는 일반 PC용 윈도10이 아닌, ARM 프로세서 전용의 윈도10을 탑재했다. 이는 전작이라 할 수 있는 갤럭시 북S와 같다.

ARM 기반 윈도10의 성능과 기능은 등장한지 수년이 지난 현재도 영 신통치 못하다. 전작인 갤럭시 북S 기준으로, 기존 x86 프로세서용 윈도10에서 사용하는 프로그램의 상당수는 설치조차 할 수 없다. 일부 설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에뮬레이션을 통해 구동하다 보니 성능이 크게 떨어진다. 처음부터 ARM 프로세서를 지원하는 앱이나, 마이크로소프트 스토어를 통해 제공되는 공용 앱 정도가 전부다.

사용할 수 있는 앱이 제한되는 만큼 할 수 있는 기능도 제한된다. 일반적인 문서 업무나 인터넷 검색, 멀티미디어 콘텐츠 감상 정도가 전부다. 게임은 일부 패키지 게임을 제외하면 인기 온라인 게임은 거의 포기해야 하는 수준이다. 즉 기존 x86 프로세서를 탑재한 일반 노트북과 비교해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는 ‘반쪽’짜리 노트북인 셈이다.

이번 갤럭시 북 고 역시 제품소개에서 프로그램/앱 호환성 등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이 없다. 단지 ‘스냅드래곤 2세대 7C 프로세서를 탑재해 매끄러운 사용 경험을 제공’한다는 문구와 자사의 ‘갤럭시’ 시리즈 스마트폰 및 태블릿과의 연동 기능만 강조한다. 최신 프로세서를 탑재했다고는 해도, 메모리와 저장공간이 반 토막이 난 만큼 성능도 기대하기 힘들다.

그런데, 이런 반쪽짜리에 불과한 노트북의 출고 가격이 58만9600원, 즉 60만원에 가까운 가격으로 출시됐다. LTE를 지원해 언제 어디서든지 인터넷 연결이 가능하다는 장점과 다른 갤럭시 시리즈와의 연동 기능만 보고 60만원에 가까운 금액으로 선뜻 구매하기가 상당히 부담스럽다.

60만원이라는 금액이면 이 제품보다 성능과 사양, 활용도가 좋은 x86 기반 일반 노트북을 살 수 있다. 비슷한 가격의 인텔의 10세대 프로세서나 AMD 3세대 프로세서를 탑재한 노트북은 더 많은 메모리와 저장공간을 탑재하고, 각종 인기 온라인 게임까지 쌩쌩 돌릴 수 있다.

LTE 연결 기능은 공공 와이파이망이 촘촘히 깔린 국내 환경에서는 큰 장점이 되지 못한다. 여차하면 스마트폰의 테더링 기능을 이용하거나, 작은 크기로 휴대가 간편한 LTE 에그 등을 이용하면 LTE 미지원으로 인한 연결성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삼성 북미지역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갤럭시 북 고를 4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 삼성 북미지역 홈페이지 갈무리
삼성 북미지역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갤럭시 북 고를 40만원대에 구매할 수 있다. / 삼성 북미지역 홈페이지 갈무리
가격 자체도 문제다. 갤럭시 북 고의 해외 정식 출시 가격은 부가세 제외 기준 349.99달러(40만4413원)다. 국내와 비교를 위해 10% 부가세를 더하면 약 45만원으로, 국내 출고가보다 10만원 이상 저렴하다. 이 정도 가격쯤 되어야 ‘실속형 노트북’이라는 말이 어울린다.

그뿐만이 아니다. 출시 기념으로 블루투스 마우스와 노트북을 꾸밀 수 있는 디즈니 스티커 3종, 파우치 등을 증정하는 국내와 달리, 해외에서는 기존에 사용하던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노트북을 반납하면 최대 300달러를 할인하는 보상 판매를 진행 중이다. 보상 판매를 잘 이용할 경우, 최저 49.99달러, 약 5만원대의 가격에 갤럭시 북 고를 살 수 있다. 아무런 할인 혜택 없이, 그다지 도움이 안 되는 사은품만 주면서 거의 60만원에 달하는 금액을 전부 받는 국내와는 딴판이다.

삼성이 생각하는 ‘실속형’ 제품의 기준은 무엇일까. 약 130만원에 달하는 가격에 출시된 전작 ‘갤럭시 북S’에 비해 출고가가 절반 정도에 불과해서 ‘실속형 노트북’이라고 한 것일까. 적어도 해외와 비슷한 가격으로 출시했으면 ‘실속형 노트북’이라는 명분도 어울리고, 기존 갤럭시 시리즈 사용자들에게도 나름 메리트가 있는 제품이 되었을 것이다. 국내에서만 통하는 ‘코리아 프리미엄’에 기반한 납득할 수 없는 비싼 가격은 소비자를 우롱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최용석 기자 redpriest@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