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가상자산 거래소가 특정금융법(이하 특금법)상 신고수리를 위한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받기까지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시중 은행들이 특금법 유예 기한을 꽉 채우고 나서야 확인서 발급을 내줄 가능성도 제기된다. 이에 가상자산 업계에서는 거래소가 확인서 발급과 동시에 신고수리 신청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며 이는 사실상 접수가 불가능하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신고수리 위한 첫 위험평가...항목 늘면서 시간도 ↑

26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에 비상이 걸렸다. 일부 은행이 9월쯤에나 실명계좌를 발급하겠다는 입장을 내보이기 때문이다.

이는 특금법 때문이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특금법 시행에 따라 정보보호관리체계(ISMS) 인증과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받아 오는 9월 24일까지 신고수리를 마쳐야 한다. 하지만 시중은행은 심사 항목이 늘어난 데다 첫 제도권 진입을 위한 위험평가라고 판단해 심사를 늦추고 있다. 이에 업계에서는 다소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실제 현재까지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받은 가상자산 거래소는 한 곳도 없다.

국내 은행 관계자는 "위험평가가 면밀히 이뤄지고 있다"며 "최근 은행연합회가 새로운 내용의 위험평가 항목을 공개한 만큼 이를 참고해 진행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신고수리를 위한 위험평가는 모든 은행이 처음이다"라며 "실명계좌를 최초로 개설하거나 재계약할 때와는 다른 수준의 심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이어 "서류 심사를 진행한 후 이를 바탕으로 현장 실사를 실시한다"며 "보완이 필요한 부분을 가상자산 거래소에 전달하고 실사를 재차 진행하면 상당한 기간이 걸린다"고 설명했다. 또 "구체적인 스케줄은 알 수 없지만 신고접수 절차를 고려해 늦어도 유예 기한이 도래하는 날에는 확인서를 발급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정부 눈치에 첫 발급 부담 작용도…업계 ‘비상’

가상자산 업계는 정부가 가상자산 시장에 부정적인 기조를 유지하면서 은행이 확인서 발급을 미루는 분위기가 강하다고 봤다. 제일 먼저 확인서를 발급할 경우 정부와 업계의 이목이 쏠리는 것도 부담이라는 평가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은행의 위험평가는 대부분 정성평가로 심사 기간은 얼마든지 늘리거나 줄일 수 있다"며 "제일 먼저 확인서를 발급할 경우 부담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은행 입장에서 9월 24일에 발급하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안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은행이 실제 실명계좌를 발급해주기 위해 실사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지만, 절차상 어쩔 수 없이 실시하는 경우도 있다. 결국 금융위원회가 조금이라고 여지를 주지 않으면 긍정적인 평가를 주거나 발급 시기를 당기기 어렵다"고 말했다.

최종적으로 은행장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점도 확인서 발급을 늦추는 요인으로 꼽힌다. 국내 주요 은행 소속의 자금세탁방지 업무 담당자는 "특금법상 실명계좌 발급은 준법감시인 보고책임자와 부관부서장의 사인을 필요로 한다"면서도 "사회적으로 이슈가 된 사안에 대해서는 경영진 보고와 승인을 받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 거래소는 애가 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명계좌 확인서를 발급받지 못하면 신고접수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모든 요건을 구비한 후 확인서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블록체인 전문 변호사는 "특금법이 3월 25일에 시행되고 약 4개월이 지났지만 신고수리 절차가 좀처럼 진행되지 않고 있다"며 "신고 접수를 수정하고 보완하기 위해서라도 위험평가를 마치고 자금세탁위험이 비교적 적다고 판단한 가상자산 거래소에 대해서는 늦지 않게 확인서를 발급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아라 기자 arch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