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입지를 굳혀 온 K배터리의 위상이 안전성 문제로 휘청인다. 전기차 판매가 증가하며 화재 사고 발생과 리콜 사례도 늘어난 결과다.

전기차 화재의 원인이 명확하게 규명된 것은 아니지만, 배터리 결함 가능성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크다. 배터리 업계가 명확한 원인 규명에 나서는 동시에 안전성 확보에 더욱 전력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 외신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제너럴모터스(GM)는 23일(현지시각) 전기차 쉐보레 볼트 EV에 발생한 두 건의 차량 화재와 관련해 리콜 결정을 내렸다. 리콜 대상 차량에는 LG에너지솔루션이 제조한 배터리가 탑재됐다.

배터리 화재 문제로 리콜을 겪었던 쉐보레 전기차 볼트EV / 한국GM
배터리 화재 문제로 리콜을 겪었던 쉐보레 전기차 볼트EV / 한국GM
리콜은 소프트웨어 업데이트가 아닌 배터리 모듈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번 리콜 대상이 2017∼2019년 생산된 6만8600대 중 일부로, 리콜 비용 부담이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앞서 LG에너지솔루션은 현대차와 2017년 11월부터 2020년 3월 사이 생산된 코나EV 7만5680대를 대상으로 ‘고전압배터리시스템(BSA)’을 교체해주는 리콜을 실시 중이다.

하지만 6월 18일 충남 보령에서 주차 중이던 코나EV가 화재로 전소됐고, 6월 23일에는 노르웨이 오슬로 한 도로변에 주차 중인 차량에서도 불이 났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두 사고 모두 리콜 대상이 아닌 차량에서 발생했다. 배터리 업계는 LG에너지솔루션이 잇따른 리콜과 화재 사고 여파로 심각한 이미지 타격을 입은 것으로 본다.

전기차 화재는 더이상 남일이 아니다. 최근 SK이노베이션 배터리를 탑재한 전기차에서도 연기가 발생하는 사고가 났다.

14일 대구 서부소방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45분쯤 주행 중이던 현대자동차 포터2 일렉트릭에서 연기가 발생해 소방대원들이 차량에 1시간 30분 동안 주수(注水) 조치를 진행했다.

SK이노베이션 배터리 탑재 전기차는 아직까지 화재가 발생한 사례가 없지만 조사 결과에 따라 첫 사례로 남을 수도 있다.

현대차 포터2 일렉트릭 / 현대자동차 제공
현대차 포터2 일렉트릭 / 현대자동차 제공
삼성SDI도 피해가지 못했다. 독일 BMW와 미국 포드는 2020년 10월 각각 PHEV의 배터리 화재 가능성 때문에 리콜 조치를 발표했다. 이들 차량에는 모두 삼성SDI의 배터리가 장착됐다.

배터리3사는 더이상의 ‘흑역사’를 남기지 않기 위해 안전성에 최우선 가치를 둔 배터리 기술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니켈·코발트·망간·알루미늄(NCMA) 4원계로 안정성과 용량, 수명을 모두 잡는다. NCMA 배터리는 니켈 함량이 89~90%에 달하고 코발트는 5% 이하다. 저렴한 알루미늄을 추가해 가격 경쟁력도 높다.

SK이노베이션이 자체 개발한 ‘E-팩’ 기술은 열을 근본적으로 차단해 일부 셀에서 화재가 발생해도 팩 전체로 화재가 번지지 않게 할 수 있게 해준다. 열 확산을 차단하면서도, 오히려 부품 수를 줄여 공간 효율은 높아졌다. SK이노베이션은 E-팩 기술 개발을 올해 완료했다. E-팩을 적용한 전기차 상용화 시점은 2024~2025년으로 전망된다.

삼성SDI 각형 배터리 셀 / 삼성SDI
삼성SDI 각형 배터리 셀 / 삼성SDI
삼성SDI는 3분기 출시 예정인 Gen.5(젠5, 5세대) 배터리가 주행거리와 안전성을 모두 잡을 기대주다. Gen.5 배터리에는 니켈 88% 이상의 하이니켈 NCA 기술이 적용됐다. 배터리 용량을 획기적으로 늘렸고, 알루미늄 소재와 특수 코팅 기술을 더해 배터리 열화를 최소화시켰다.

배터리3사는 ‘꿈의 배터리’로 불리는 전고체배터리 등 차세대 배터리 개발에도 적극 나선다. 전고체 배터리는 액체의 전해액이 아닌 고체의 전해질을 사용해 발화 가능성이 ‘제로(0)’에 가깝다. 안전 관련 부품을 줄이고, 그 자리에 에너지 용량을 높이는 물질을 채울 수 있다.

정부는 전고체·리튬황·리튬금속 등 차세대 2차전지의 조기 상용화를 위한 기술 개발에 2028년까지 총 3066억원을 투입한다. 차세대 2차전지 개발을 지원하는 '차세대 배터리 파크'도 2026년까지 구축할 예정이다. 2025년부터 전고체·리튬황·리튬금속 전지에 대한 상용화 기술 개발에 나서고 2030년 차량 실증을 통해 양산화에 나선다.

장혁 삼성SDI 연구소장은 "기술 한계 도전을 통해 에너지밀도를 높인 안전한 전고체 배터리 개발의 선두주자가 되겠다"고 말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