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위기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10년만이다. 셧다운제 얘기다. 청소년 보호를 위해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이 우세했던 사회 분위기가 이제는 이를 폐지해야 한다는 쪽으로 기울었다. 최근 초통령 게임 마인크래프트가 셧다운제 규제에 포함되면서 반발 여론이 들끓은 탓이다. 게임업계와 정치권, 담당부처인 여성가족부까지 여론에 손을 들어주면서 셧다운제 폐지 시각이 우세하다. 2011년 도입 후 10년 동안 해묵은 논쟁을 거듭하던 셧다운제의 역사를 되짚어 본다.

2012년 7월 본격적인 온라인 게임시간선택제 민간시행에 앞서 정부는 ‘게임이용확인서비스’ 홈페이지를 통해 자녀의 게임 시간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학부모에게 안내했다. / 조선DB
2012년 7월 본격적인 온라인 게임시간선택제 민간시행에 앞서 정부는 ‘게임이용확인서비스’ 홈페이지를 통해 자녀의 게임 시간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학부모에게 안내했다. / 조선DB
10년간 존치 주장…한달 새 뒤바뀐 여의도 민심

28일 업계에 따르면 셧다운제 폐지가 주요 대선 공약으로 언급된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이달 초 가장 먼저 셧다운제 폐지를 언급했다. 같은 당 대선후보인 이낙연 전 대표 역시 "셧다운제는 원점에서 재검토하고 재설계해야 한다"며 "셧다운제는 한국에만 있는 기이한 규제로 실효성이 의문시 된다"고 강조했다. 야당인 김태호 국민의힘 의원과 유승민 의원, 하태경 의원 등도 비슷한 맥락의 발언을 하거나 셧다운제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는 셧다운제를 바라보는 여론이 과거와는 완전히 뒤바뀌었기 때문이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된 마인크래프트 사태가 확산을 키웠다는 분석이 힘을 얻는다. 초등학생 이용자가 다수인 마인크래프가 만 18세 이상만 이용할 수 있다는 소식에 여론이 들끓었다. 논란이 커지자 여성가족부는 "셧다운제의 한계를 인정하고 개선책을 고민하겠다"고 입장을 내놨다.

정치권은 이틈을 타 기존 강제적 셧다운제(청소년보호법 제26조)를 폐지하자는 법안을 발의했다. 대선을 앞둔 여의도가 새롭게 캐스팅 보트로 떠오른 청년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움직인 셈이다.

"게임중독에 빠진 학생들 구하자" 청소년 보호 목적으로 시작

셧다운제는 2011년 11월 20일 시작됐다. 2010년 말 국회에 계류 상태였던 셧다운제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와 본회의를 거치면서다. 당시 게임은 중독을 유발한다는 주장과 함께 범죄 유발 요인으로 지목됐다. 언론매체는 장시간 온라인 게임으로 사망한 이들의 사례와 자기 컨트롤을 못해 벌어진 각종 강력범죄를 보도했다. 자녀 교육을 이유로 게임을 법적으로 제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학부모 사이에서도 높아졌다.

게임을 바라보는 여론이 악화되자 관련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는 청소년 보호를 위해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이들은 16세로 적용 연령을 삼고 2년마다 범위를 새로 논의키로 했다.
결국 셧다운제는 2011년 4월 29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찬성 117표, 반대 63표, 기권 30표로 가결됐다. 다음달인 5월 19일 법안이 공포됐고, 11월 20일부터 제도가 시행됐다. 정부는 업계 반발에도 불구 2012년 1월까지 계도 기간을 두고 게임사가 스스로 셧다운제를 도입하도록 지시했다. 이후 2012년 7월부터 민간에서 본격 시행했다.

13개 게임사 헌재에 위헌 묻자…"합헌"

네오위즈를 비롯한 13개 게임사는 직업을 수행할 자유가 침해된다는 이유로 2011년 11월 4일에 헌법소원을 제기하며 반발했다. 이에 여가부는 법 시행에 따르지 않은 게임사 두 곳을 경찰에 신고하는 등 더 강력한 셧다운제 정책을 예고했다.

대선을 앞둔 2012년 9월에는 여가부가 PC게임과 모바일 게임을 강제적 셧다운제에 포한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국민게임으로 떠오르던 ‘애니팡’ 제작사 선데이토즈는 규제가 모바일 게임 업계를 위축할 것이라고 비난했다.

하지만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모바일 게임까지 포함하는 셧다운제 확대 정책이 옳다고 주장했다. 당시 경쟁자였던 문재인 대통령도 확대에 찬성했다. 다만 충분한 의견 수렴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2014년 4월 헌법재판소는 ‘강제적 셧다운제’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조선DB
2014년 4월 헌법재판소는 ‘강제적 셧다운제’에 합헌 결정을 내렸다./ 조선DB
"셧다운제 없애자" 목소리 나왔지만 번번이 실패

2014년 3월에는 박근혜 정부가 규제개혁장관 회의에서 셧다운제를 재검토하겠다고 언급했다. 비슷한 시기 헌법재판소는 3년 전 네오위즈가 청구한 헌법소원을 기각시켰다. 재판관 7인의 의견을 종합한 결과 16세 미만 청소년의 게임이용 규제가 과하지 않다는 결론이 도출된 것이다.

당시 헌재는 "청소년의 인터넷게임 이용률이 높아 중독성이 강해 과도한 제한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이어 여가 활동의 수단인 온라인게임이 부정하지 않다는 점을 거론하면서도 "청소년의 게임 과몰입 등 부정적 결과와 청소년 스스로 통제가 힘든 특성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2016년 12월 이명박 정권에서는 친권자 요청이 있을 경우 게임접속을 차단하도록 하는 ‘부모선택제’를 정부 입법안으로 제출했다. 20대 국회는 강제적 셧다운제를 고수할 뿐 완화 정책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2017년 4월 여가부 역시 제도완화 대신 강제적 셧다운제를 2019년까지 연장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문재인 정권 초기인 2017년 10월 문체부는 셧다운제의 제도적 효과를 검토했다. 연구결과 셧다운제가 청소년 수면 보장과 게임 과몰입 예방에 도움이 안 된다고 밝혀지자 게임학계는 폐지를 적극 주장했다. 이때도 여가부는 아이들의 게임 과몰입에 대한 국민의 우려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한달 뒤인 11월 20일 셧다운제 시행일에 맞춰 김병관 의원이 셧다운제 삭제를 담은 개정안을 발의했지만 통과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2019년이 되자 여가부와 문체부는 다시 한 번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진선미 여가부 장관은 수면권 보장을 이유로 강제적 셧다운제 유지를 명백히 했다. 두 부처는 이번에도 모바일, 콘솔게임 적용 논의를 2021년으로 미뤘다.

2020년 6월 들어선 21대 국회에서 셧다운제 논의가 활발해지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이다. 이를 바탕으로 헌법소원 재청구 움직임도 생겼다. 정보통신 시민단체 오픈넷은 셧다운제 폐지 헌법소원 청구인 모집 글을 27일 올렸다.

오픈넷 관계자는 "셧다운제는 국내에만 적용되는 갈라파고스적 규제라 게임산업 전반을 위축시키고 있다"며 취지를 밝혔다.

박소영 기자 sozero@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