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11일 배터리 분쟁을 종결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이 보이지 않는 신경전을 이어간다. 앞서 경영실적 발표에서 SK가 일시금으로 지불하는 합의금 1조원을 ‘영업외손익’에 반영한 반면, LG는 ‘영업이익’에 포함하며 다른 해석을 내놨기 때문이다.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각사
김종현 LG에너지솔루션 사장(왼쪽)과 김준 SK이노베이션 총괄사장 / 각사
30일 배터리 업계에 따르면, 증권가는 LG에너지솔루션의 2분기 영업손익에 화재가 발생한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무상 교체 충당금 4000억원이 반영돼, 영업손실이 수천억원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LG에너지솔루션의 실적은 시장 예측과 달랐다. LG화학은 29일 2분기 실적발표에서 LG에너지솔루션이 매출 5조1310억원, 영업이익 8152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에너지저장장치(ESS)용 배터리 무상 교체 충당금 4000억원뿐 아니라 SK이노베이션으로부터 소송 합의금 1조원까지 일회성 비용으로 반영한 것이다.

이명석 LG화학 경영기획 담당은 29일 콘퍼런스콜에서 "소송 합의금 중 올해와 내년 일시금으로 받을 1조원을 SK가 당사의 영업비밀을 사용한 대가로 보고 영업이익으로 반영했다"며 "기타 일회성 비용으로 4000억원쯤의 ESS 교체 비용이 발생해, 2분기 반영된 일회성 수익은 총 6000억원쯤이다"라고 말했다.

앞서 SK이노베이션은 올해 1분기 5025억원의 영업이익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흑자전환했다고 5월 13일 밝혔다. 세전이익은 5276억원의 손실을 기록했다. 배터리 소송 합의금 1조원쯤을 영업외손실로 처리했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기업 간 소송에 따른 합의금은 영업외이익으로 반영하는 것이 통상적이다"라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2023년 이후 발생할 로열티 부분은 영업이익으로 반영할 계획이다.

하지만 LG에너지솔루션의 입장은 다르다. 영업비밀 침해나 특허와 관련한 합의금은 영업이익에 속하는 게 맞다는 주장이다. LG에너지솔루션(당시 LG화학)은 2019년 중국 배터리 기업 ATL을 상대로 미국에서 제기한 ‘안전성 강화 분리막(SRS)’ 기술 특허소송에 합의하면서, ATL이 미국에서 벌어들이는 SRS 매출의 3%를 기술 로열티로 받았다. 이 로열티는 LG에너지솔루션의 영업이익에 반영됐다.

LG에너지솔루션 관계자는 "SK와 합의 내용에 따라 일시금 1조원에 대해 올해와 내년 각각 5000억원씩 수령 예정이며, 합의서의 법적해석과 외부기관 의견서를 근거로 합의금을 당사의 영업비밀 사용 대가로 보고 2분기 영업이익에 반영했다"고 말했다.

해외기업 사례를 살펴보면 퀄컴은 애플과 특허 소송을 중단하기로 합의하면서 애플에 지급받은 합의금 47억달러(5조4000억원)를 2019년 2분기 영업이익에 반영한 바 있다. 애플이 당시 지출한 합의금을 영업이익이나 영업외이익에 반영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입맛대로’ 손익계산서는 모두 법적으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견해가 중론이다. 2011년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 이후 구체적인 회계 처리를 ‘기업 재량’에 맡기고 있어서다. 회계 처리 방식을 일일이 정해줬던 과거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과 다르다. 일반적 원칙만 지키면 자사에 유리한 방식의 회계 처리가 가능해진 셈이다.

배터리 업계는 결과적으로 LG에너지솔루션과 SK이노베이션의 회계 처리 온도차에 영업비밀 침해에 대한 각사의 속내가 담겼다고 해석한다.

배터리 업계 관계자는 "LG에너지솔루션은 합의금 1조원을 영업비밀 사용 허락 대가로 판단했고, SK이노베이션은 이를 소송 비용 정도로 의미 부여한 것이다"라며 "양사가 극적 합의에는 성공했지만, 2년 넘게 지속된 소송으로 생긴 앙금은 여전히 풀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광영 기자 gwang0e@chosunb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