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포커스] 美 경쟁정책 철학, 시카고학파에서 新브랜다이스학파로

이은주 기자
입력 2021.08.02 06:00
'구조주의(하버드학파)'에서 1980년대 신자유주의 바람 '행태주의(시카고학파)'로
2010년대 들어 빅테크 독점 폐해 부각되면서 '신구조주의(신 브랜다이스학파)'로

미국은 반독점과 경쟁정책의 본산이다. 19세기 후반 석유, 철도 등 주요 산업에서 독과점이 심각해지자 1890년 셔먼 반독점 법(Sherman Antitrust Act)이 제정됐다. 셔먼 법은 동종업종의 카르텔(담합)과 트러스트(기업합병)을 처벌했다. 1903년에 법무부 내에 반독점국이 설립됐고 1911년 미국 석유시장의 90%를 장악했던 스탠더드 오일은 오랜 소송 끝에 33개 회사로 강제 분할됐다.

1914년에는 민사적 규제수단까지 인정한 클레이튼 법(Clayton Antitrust Act)과 독점행위 규제를 전담하는 연방거래위원회(FTC) 설립 법이 만들어졌다.

연방대법원은 1911년 최초로 분할사건을 심리한 이래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52개 분할 사건을 판결하고 이 중 45개 사건에서 분할을 명령했다. 알루미늄 기업인 알코아(1945년)는 3개로 쪼개졌고 파라마운트(1948년)는 극장과 영화배급사로 분할됐다. 통신기업인 AT&T도 1982년 결합판매를 통한 독점을 이유로 8개 기업으로 나눠졌다.

20세기 초중반 내내 미국의 경쟁정책 기조는 특정 기업의 시장 지배력이 커지면 담합과 같은 반경쟁적 행위가 발생할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고 시장 구조에 직접 규제를 가하는 구조적 해소책을 선호했다. 시장 구조에 집중한다고 해서 이를 '구조주의(하버드 학파)'라고 한다.

1980년대 이후 시장 효율을 중시하고 작은 정부를 선호하는 신자유주의가 득세하면서 미국 경쟁정책 철학의 주류도 '행태주의(시카고 학파)'로 변화했다. 행태주의는 소비자 후생을 중심으로 경제적 효율성 관점에서 규제를 최소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한다.

독과점 기업이 시장을 장악한 뒤 가격을 급격히 올려버리면 소비자 후생이 급감해 문제이지만, 시장점유율 등 시장 구조가 독점적이어도 소비자 가격이 안정적이라면 규제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반독점법의 적용 대상 범위가 소비자 가격 등 소비자 후생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행위로 제한되고 구조적 해소책에 대한 선호도가 감소하면서 법원의 기업분할 심리 및 판결 건수가 크게 감소했다. 한국은행의 올해 3월 '美 빅테크에 대한 반독점규제 현황 및 파급영향'' 보고서에 따르면, 법무부와 FTC의 클레이튼법(합병) 집행 건수가 보합세를 보이는 가운데 법무부의 셔면법 위반(비합병) 소송 제기 건수는 크게 감소했다. 셔먼법은 관련 시장의 독점화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며, 클레이튼법은 '경쟁을 실질적으로 감소'시키거나 '독점을 발생시키는' 기업결합을 금지하는 것이다.

2000년대 마이크로소프트(MS)에 대한 반독점 소송도 최근 빅테크에 대한 반독점 소송과 유사했으나 이같은 '행태주의' 영향으로 MS는 기업분할을 모면했다. MS는 윈도 운영체제에 인터넷 브라우저(익스플로어) 등을 기본으로 장착해 경쟁을 제한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1심 법원은 반독점법을 위반했다고 판결하고 2개 회사로 분할하도록 명령했지만, MS는 끼워팔기 행위를 중단하기로 법무부와 합의했고 항소심 법원도 MS에 공정경쟁을 보장할 조치만 명령했다.

하지만 2010년대 이후 빅테크 기업이 꾸준히 성장하고 빅테크 독과점 폐해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면서 소비자 후생 기준을 재해석하거나 구조주의로 회귀하자는 의견이 점차 확산하고 있다. 기존 소비자 후생 기준을 확대 해석해 신생기업 인수와 같이 소비자 후생에 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반경쟁적 행위를 규제 대상에 포함시키자는 것이다.

빅테크 기업의 독과점 폐해에 대한 연구 성과도 꾸준히 쌓여왔다. 반독점 관련 법학 전문가이자 스포티파이 임원인 호라시오 구티에레즈와 뉴욕대 경제학자 토머스 필리폰 등의 연구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소위 슈퍼스타 기업이 사회 전반의 생산성에 기여하지 못하며 노동의 집중을 불러 불평등을 심화시킨다는 연구 결과를 2016년 이후 집중적으로 내놓았다. 리나 칸 FTC위원장의 '아마존 반독점 역설' 논문도 2017년 1월에 발표됐다.

이들은 반독점 규제와 노동법 등에 관심을 기울여 왔던 브랜다이스 연방대법관의 이름을 따서 ‘신(新) 브랜다이스학파(Neo Brandeisian)'로 불린다. 경쟁정책에서 시장 구조를 중요시했던 이전 '구조주의'로 복귀한다는 의미에서 '신 구조주의'로 부르기도 한다.

루이스 브랜다이스는 하버드 로스쿨 출신으로 1910년부터 1939년까지 연방대법관을 역임했다. 셔먼 반독점법 1890년에 제정되긴 했지만 1900년대가 되기까지 셔먼 법을 적용하려는 노력이 거의 없었다. 브랜다이스는 1895년부터 거대 기업들이 경쟁기업과 소비자, 자사 노동자들에게 해를 끼친다는 점을 지적했고, 대법관이 된 이후 1914년 클레이턴 독점금지법과 연방거래위원회(FTC) 설립 법에 기여했다.

신 브랜다이스학파는 소비자 뿐 아니라 노동자와 민주주의를 보호하기 위해 특정 기업의 비대화를 막아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기업 분할과 같은 강력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바이든 정부가 이들을 전면 기용하면서 경쟁당국 정책 기조에 변화 조짐이 읽힌다.

7월 21일(현지시각)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구글 저격수로 유명한 조너선 캔터 변호사를 법무부 반독점 국장에 지명했다. 앞서 6월에는 ‘아마존 킬러’로 불리는 리나 칸 콜럼비아대 법대 교수를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에 임명했다. 또 3월에는 팀 우 교수를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대통령 특별고문으로 앉혔다. 그는 대표적인 반독점 주창자다.

리나 칸 FTC 위원장 / cnbc television 유튜브 화면 갈무리
리나 칸 "소비자 후생 기준 다시 정의하자"

리나 칸 FTC위원장은 소비자 가격 인상 여부에 초점을 둔 ‘소비자 후생’ 기준을 재정의하자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논문 ‘아마존의 반독점 역설(Amazon Antiturst Paradox)’에서 기업이 시장을 독점해도 가격에 영향이 없으면 독점규제에 위반하지 않는다는 시카고 학파식 논리가 빅테크 시대에는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최난설헌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리나 칸은 아마존이 소비자 가격을 올리지 않더라도, 아마존 쏠림이 심화되면 결국 오프라인 소매점들이 사라지는 결과를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며 "또 소비자 후생을 가격뿐 아니라 궁극적인 선택권 제약의 결과를 종합 고려해 독점의 폐해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고 설명했다.

칸은 플랫폼이 ‘양면시장’을 운영하면서 영업이익을 올리는 구조라는 데 주목했다. 플랫폼은 이용자에게 무료로 좋은 서비스를 제공해 시장 지배력을 확장하면서, 이면의 광고 시장에서 더 많은 광고료를 받는 영업구조로 이익을 올린다. 그렇기 때문에 더이상 ‘소비자 가격 상승'을 중심으로 후생의 증감 여부를 판단할 수없다고 본 것이다.

칸 위원장은 또 독과점 기업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데이터를 독점한 구글이 어떤 검색 결과를 첫 페이지에서 보여주는지에 따라 시민의 판단이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신 브랜다이스학파 "기업 비대화 자체가 위험하다"

신 브랜다이스학파는 기업의 ‘비대화' 자체를 경계해야 한다고 본다. 지난해 말 '독점규제의 역사'라는 책을 발간한 지철호 전 공정거래위원회 부위원장은 "브랜다이스는 과거 기업이 거대화되면, 여러 문제를 초래하므로 이를 해체시켜 작은 기업이 경쟁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며 "구조적 분할(structural separation, 이해가 상충되는 사업조직의 법적 분할)과 사업 부문 제한(line of business restrictions) 등의 대안을 제시하는 미 하원 보고서 등의 맥락은 브랜다이스 관점과 일맥상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칸 위원장이 주장하는 ‘구조적 분할'이 미국이라는 특수성에 기인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빅테크 기업이 없는 유럽의 경우 ‘빅테크 분할' 논의가 나오지 않지만 미국은 이미 ‘문제가 있는 기업은 분할할 수 있다는 경험'을 갖고 있다는 설명이다.

FTC, 7월1일 경쟁법 적용 기준 변경...빅테크 규제 어디까지 갈까

신브랜다이스 학파가 바이든 정부에 기용되면서 ‘빅테크 독과점 견제’를 위한 행정부 전열도 본격적으로 정비되는 조짐이다.

가장 큰 변화는 리나 칸 위원장을 둔 FTC다. 칸 위원장은 7월 1일 경쟁법 적용의 기준을 변경했다. 그는 ‘소비자 후생 증진'에 뒀던 자체 지침을 폐기하고, ‘불공정 경쟁방지'를 위한 역할에 힘쓰겠다고 선언했다.

지철호 전 부위원장은 "FTC의 기조 전환을 선포한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FTC는 1914년 독점화와 불공정행위 등 사법절차로 해결하지 못하는 부문을 행정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출범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FTC는 의회에 의존하면서 설립 취지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지 못했다.

하지만 FTC는 최근 빅테크 기업이 잠재적 경쟁 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사업을 무리없이 확장할 수 있었던 미국 빅테크 기업의 ‘킬러 인수’ 관행에 제동을 걸기 시작했다. 2020년 12월 소송을 제기해 페이스북의 왓츠앱, 인스타그램 인수를 다시 들여다 보고 있다.

지 전 부위원장은 "FTC 스스로가 2015년 ‘소비자 보호'를 자신의 역할로 강조하면서 설 자리를 줄인 측면도 있다"며 "칸의 선언은 앞으로 그렇게 하지 않겠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반독점 집행 조직에도 변화가 생긴다. FTC를 비롯해 반독점법을 집행해 온 미국 법무부(DOJ)외에 백악관 조직도 변화하기 때문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행정명령을 통해 백악관 내 추가적인 반독점 집행 조직을 추가로 만들 계획을 발표했다. 행정명령에 따르면 백악관 행정실 내에 설치되는 ‘백악관 경쟁위원회'는 미국 경제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거나 집중, 독점 등 불공정한 경쟁을 해결하기 위한 연방 정부의 노력을 조정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바이든 대통령은 "독과점 업체의 폭력적 행위에 관용은 없다"며 빅테크를 포함한 대기업의 관행에 강력한 조치를 예고했다.

이은주 기자 leeeunju@chosunbiz.com

T조선 뉴스레터 를 받아보세요! - 구독신청하기
매일 IT조선 뉴스를 받아보세요 닫기